굳어지는 임표 실각설-미국의 유력 신문 잡지가 분석한 북경의 미스터리|워싱턴·포스트=본사 특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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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6면

중공의 국방상이며 공식적인 모택동의 후계자로 지칭되던 임표는 분명히 중공 지도층의 재편으로 숙청 당한 것으로 보인다. 임표의 실각은 모택동의 승인 아래 이루어진 것이며, 수개월 전에 시작되어 지난 여름 또는 초가을에 절정을 이룬 권력투쟁 속에서 빚어진 것으로 워싱턴 의 정통한 중공 소식통들은 보고 있다. 임표의 숙청은 수상 주은래와 그 측근자들의 지위를 강화시키는 반면 임을 후계자로 지명했던 모택동의 위신을 추락시킬 것이다.
임의 축출을 뒷받침해 줄 만한 그럴듯한 증거는 이제 북경 등 그 밖의 지역으로부터 수없이 많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예를 들어 임표와 그의 추종자들이 세 차례나 모택동 암살을 기도했다는 말이 당 간부들 사이에 나돌고 있는 것이 그 하나다. 이런 얘기가 사실인지는 아직은 알 길이 없다.
또한 임표는 67년 여름에 출현, 그후 해체 당했던 극좌파의 운동이었던 소위 『5·16병단』을 지휘했던 것으로 비난을 받고 있다.
이와 아울러 임표가 중공 비행기를 타고 소련으로 망명하려고 했으나 그 비행기가 지난9월l2일 밤 몽고 국경 안쪽 1백마일 되는 곳에 추락했다는 얘기도 나돌고 있다.
탑승객은 9명이었으나 화상으로 신원 식별이 불가능했다는 얘기가 있는가 하면 그들은 모두 사오 십대로서 권총으로 사살된 흔적이 있다는 보도도 있다.
임의 실각을 뒷받침할 또 하나의 증거는 북경 주재 외국 대사관들이 모든 행사나 또는 중공 정부에 보내는 문서에 임표의 이름을 기재하지 말것을 통고 받고 있다는 사실이다.
이에 따라 각국 대사관은 중공의 유엔 가입 축하 메시지에서도 임표의 이름을 기재하지 않았다. 축하 메시지의 수신자로 기재된 이름은 모택동·주은래 또는 부주석 동필무 등뿐이었지 임의 이름은 찾아볼 수가 없었다.
이밖에도 중공 안에서 아무 의미도 없는 듯한 갖가지 발언이 모두 임표를 간접적으로 비난하는 것으로 해석되고 있다.
예를 들면 10월20일 북경 방송이 방송했던 노신 작품의 한 귀절이 그것이다. 문제의 귀절은 30년대 사망한 작가 노신의 작품 중의 한 귀절인데 아마도 모택동의 현재 심경을 그대로 나타낸 것으로 생각된다. 그 귀절의 내용은 이러하다. 『두려워할 것은 적이 아니다. 나의 가슴을 아프게 하고 실망시키는 것은 무엇보다도 내편에서 겨눈 화살과 그 화살로 내가 상처를 입은 것을 보고 웃는 그 얼굴인 것이다.』 영사 서부지방으로부터 청취된 11월5일자 방송 내용의 분석에도 이와 비슷한 임에 대한 비난이 비쳤다.
이 방송은 『현대 수정주의의 괴수 후르시쵸프는 한때 스탈린을 위대한 레닌의 친우라고 칭찬했으나 스탈린 사후 그를 격렬히 비난한 사람은 다름 아닌 후르시쵸프였다』고 비난했다.
이 방송은 비록 임을 지칭하지는 않았지만 『인민의 벗을 가장하여 죄악을 범하는 이들 사이비 마르크스주의자들이야말로 가장 위험하고 사악한 프롤레타리아 독재의 적』이라고 이 방송은 주장했다.
워싱턴의 전문가들은 문화혁명 기간 중 노정된 알력으로부터 최근의 대내외 정책을 둘러싼 지도층 내부의 이견에 이르기까지의 중공 지도층의 개편을 여러 복합적인 요인이 개재된 것으로 보고있다.
이번 권력투쟁은 부분적으로는 중공 당 개혁에 의한 전국적인 통치 망의 재편을 반대하는 임을 비롯한 군부 지도자들의 기도로 발생된 것으로 보인다.
비록 지난 9월 안에 문혁 중 해체된 29개성·시·자치구에 대부분의 당 기관이 군인들을 수반으로 조직되었지만 이들 당 간부들이 중앙 정부의 권능에 복종할 것인지, 혹은 별도의 군인 특권계 급제를 형성할것인지의 문제를 두고 갈등이 대두되었을 법하다.
이 문제는 지난8월1일 중국 공산당 창당 기념일에 이미 드러났다.
당시 중요지지 사설들은 일제히 『당이 군부를 지배해야지, 군부가 당을 지배하는 것은 절대 용납될 수 없다』라는 모택동의 경축사 구절을 인용, 군에 대한 당의 우위를 주장했다. 당시 주와 임 사이에 군부의 역할에 대한 결사적인 논쟁이 벌어졌을 것으로 전문가들은 추측하고 있다.
이러한 논쟁은 닉슨 초청을 수락한 모택동의 결정으로 더욱 복잡한 양상을 띄었을 것이다.
이 움직임은 미·중공간의 해빙이 소련을 적대시하고 소련으로부터 도발의 위협을 가중시킬 것이라는 근거로 일부 군 간부들 사이에 병기 개선 주장을 아마 촉발했을 것으로 생각된다.
임은 9전 대회에서 후계자로 지명되었는데 주은래 일파는 임의 계승을 좌절시키기 위해 전당대회의 연기를 획책한 것으로 보인다.
이제 임의 실각은 중공의 후계자 문제를 다시 노정시켰다. <스탠리·카노>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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