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609억원 첫 삭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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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이 삭감됐다. 한국 정부가 분담하기 시작한 1991년 이후 처음이다. 윤광웅 국방부 장관은 4일 기자간담회에서 "방위비 분담금이 지난해에 비해 8.9%인 609억원이 줄었다"고 밝혔다. 지난해 분담금은 원화로 7469억원. 당시 달러당 1200원의 환율을 기준으로 6억2200만 달러였다.

◆3대 쟁점들=한.미 방위비 분담 협상(SMA)은 지난해 11월부터 다섯 차례 열렸다. 양측 의견은 팽팽했다. 분담금 총액, 협정 유효기간, 분담 항목이 3대 쟁점이었다.

한국은 "총액을 깎자"고 했고, 미국은 "늘리자"고 했다. 외교부의 한 당국자는 "2004년은 한.미 동맹 재조정기였다. 용산기지 이전, 주한미군 감축 등이 있었다. 한국의 이라크 파병으로 생기는 국방비 추가 부담도 고려돼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이해한다"면서도 증액 입장을 굽히지 않았다. "연합방위력을 유지하려면 주한미국 감축을 방위비 분담금 삭감 이유로 삼아선 안 되며 '미래 한.미동맹 정책구상(FOTA)'의 정신을 살려 증액해야 한다"는 것이었다. 2004년 방위비 증액률은 13%였다.

또 다른 문제는 유효기간이었다. 한국은 "한.미 동맹이 재조정되고 있어 앞날을 예측하기 어려우니 1년으로 하자"고 했다. 미국은 반대였다. "협상에 투입되는 노력과 시간을 고려해 5년으로 하자"고 했다. 분담금 항목도 쟁점이었다. 미국은 기존 4개 항목(주한미군 한국인 근무자 인건비, 군사건설비, 연합방위비, 군수지원비) 외에 공공요금, 임대료, C4I 개선 및 유지비 등 3개 항목을 추가해 7개 항목을 요구했다.

◆거친 협상=협상은 4차까지 힘들었다. 미국은 분담금 총액을 줄인다는 데는 동의했지만 '소폭'을 요구했고 한국은 '대폭'을 고집했다. 유효기간도 여전히 팽팽했다.

환율 문제도 끼어들었다. 환율에 따라 달러 표시 분담금이 춤을 췄기 때문이다. 2004년 분담금을 지난 3월 달러 환율 1008원을 기준으로 하면 이상해진다. 정부가 실제 지출한 7469억원을 이 환율로 적용하면 달러 지출이 실제보다 1억 달러가 늘어난다. 달러 지급이 계속되는 한 환율이 떨어지면 삭감의 의미가 없어지는 셈이다. 그래서 한국은 분담금을 '원화'로 지급하겠다고 했다고 했다. 2002~2004년 구성비는 원화 88%, 달러 12%였다.

대타결은 지난달 15일 5차회의에서 있었다. 외교부 당국자는 "4차에 걸친 회의에서 양측 입장이 좁혀졌지만 실제로 가장 크게 입장이 좁혀진 것은 5차회의에서였다"고 말했다. 이날 회의에서 한.미 양측은 협상을 끝내기로 했다. 유효기간은 2년, 항목은 4개로 하기로 했다. 4개 항목의 지출 비율도 거의 그대로 유지됐다. 2004년의 지출 비율은 인건비 43.2%, 군사건설비 31.6%, 연합방위비 11.6%, 군수지원비 13.6%다. 환율도 한국 요구가 수용됐다. 마지막 남은 문제인 방위비 총액에 대해선 미국 대표가 2주 정도 뒤 공식 회신을 보내기로 했다.

◆한국인 감원 책임 공방=그러나 주한미군이 공개적으로 반발하는 사태가 빚어졌다. 지난 1일 오후 용산 한미연합사령부 2층 긴급 기자회견장은 순식간에 썰렁해졌다. 찰스 캠벨 주한미군 참모장 겸 미 8군 사령관이 매우 싸늘한 태도를 보였기 때문이다. "주한미군 방위비가 줄어들어 한국인 인력 1000여 명 감축이 불가피하다"는 내용의 으름장을 담은 성명을 15분 정도 낭독한 뒤 그는 바로 퇴장했다. 말은 안 했지만 주한미군 방위비 분담금 협상 결과에 대한 노골적 불만으로 해석됐다.

그러나 정부 당국자는 "한국인 근로자 감원은 (미국이) 주한미군 1만2000명을 감축해 이뤄진 조치이지 한국이 방위비 분담금을 줄여서가 아니다"라고 반박했다.

윤 장관은 "돈 문제가 걸려 있는 것이기 때문에 얼굴을 붉힐 수 있는 것"이라면서 "분담금 감소로 주한미군 유지에 불편한 점이 있으면 2년 후 재협상할 수 있다"고 말했다.

김민석 군사전문기자,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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