언어를 부패로부터 지키는 일|시인의 임무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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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64세에 이른 영국태생 미국시인「W·H·오든」이 친지방문과 일련의 강연을 위해 최근 영국에 돌아왔다. 친구인 시인「스티븐·스펜더」의 집에 묵고있는 현대시단의 이 거인은 북부「런던」의 낙엽 지는 정원을 내다보면서 친구들에게 자기가 죽은 뒤엔 모든 편지를 불사르라고 당부하고 어떤 종류의 전기도 쓰지 못하게 했다.
『작가의 전기는 언제나 쓸모 없는 것일 뿐 아니라 좋지 않은 취미다. 예술과 생활사이의 관계는 너무나 분명해서 아무 것도 말할 필요가 없거나, 또 너무나 복잡해서 아무 것도 말할 수 없는 것이다.』
이렇게 말하면서 그는『모든 예술은 어떻든 그 개인경험의 이식이다. 작가는 행동인이 아니고 제작가여서 그 개인생활은 그 자신, 그의 가정, 그의 친구들 외에는 아무 관심이 없어야 한다』고했다. 그는 또한 요즘 한창 문제가 되고 있는「세대격차」에 대해서『세대의 차이란 없는 것이다. 우리는 모두 같은 시대 사람이다. 오직 기억의 차이만이 전부일 뿐이다』라고 의견을 말했다.
37년 왕당파로서「스페인」에 갔던 반「파시즘」의 시인 시절을 회상하면서 그는 말했다. 『내 생애에는 나를 곤란케 한 것들이 있다. 내가「파시즘」에 관해 쓴 것 등을 스스로 철회하거나 거부하지는 않는다.
그러나 나를 곤란케 하는 것은「누가 이득을 얻는가」하는 문제다. 시인은 전쟁에 관해서는 아무 것도 변화시키지 못했다. 그 이후에 나는 정치에 참여하는 저술이 어떤 가치가 있나 의심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행사할 유일한 일은 진실한「르포르타지」다.「존슨」박사가 저술의 유일한 목적은 독자들로 하여금 생활을 더 잘 즐기게 하든가 생활을 더 잘 견딜 수 있게 하는 것이라 했는데 옳은 말이다.
2차 대전말기에 미국에 건너간「오든」은 봄과 여름에는 「오스트리아」 「키르크스테텐」의 작은 마을에서, 가을과 겨울에는 「세인트·마크스·페이스」의 「아파트」에서 살고있다. 』 『나는 스스로 미국인이라고 하지 않고 「뉴요크」사람이라고 부른다. 나는 내가 살고있는 지역을 좋아한다. 그곳 「세컨드·비뉴」는 「택시」잡기도 쉬운 곳이다. 그러나 「뉴요크」는 살기 어렵게 돼 간다.』
그는 생존작가들에 관한 논의는 피했다. 공연히 누가 이기는가 경쟁심만 조장할 위험이 있기 때문이라는 것. 그러나 그는 오늘날의 작가의 역할에 관해서는 확고한 신념을 갖고있다.
『시민으로서가 아니고 시인으로서 유일한 정치적 의무가 있다. 그것은 작가의 언어를 부패로부터 지키는 일이다. 그리고 그것은 오늘날 특히 절실하다. 지금은 언어가 너무나 빨리 부패되고 있는 시대인 것이다. 언어가 부패됐을 때 사람들은 그들이 듣는 것을 믿지 못하고 그렇게 되면 난동으로 이끌게된다.』
「오든」은 결론적으로『예술가는「내가 무엇을 할 것인가」를 묻지 말고 대신「1971년에 대해서 무엇이 옳은가」를 물어라』고 충고했다. <「뉴요크·타임스」지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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