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 노벨문학상 작가 "세상은 왜 이리 건조할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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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러스트 강일구]

중앙일보와 교보문고가 함께하는 ‘이달의 책’ 이번 주제는 ‘11월, 시간의 조각을 맞추며’입니다. 해는 짧아지고 바람은 차져서 한 해가 저무는 그림자가 짙어지는 때, 문득 세월을 돌아보는 나침반 같은 책을 골랐습니다. 화살처럼 날아가는 하루하루를 가만히 들여다볼 수 있는 힘이 갈피갈피 숨쉽니다.

행복한 그림자의 춤
앨리스 먼로 지음
곽명단 옮김, 뿔
414쪽, 1만2000원

건조하고 냉정하다. 작품 속에 여러 계절이 있지만 느껴지는 것은 건조한 겨울뿐이다. 시작은 대개 평범하다. 한 여자가 작업실을 구하고, 어떤 아이가 등교를 한다. 그런데 이 평범한 일상다반사가 소설이 끝날 때쯤 기괴하게 일그러져버리고 만다. 일상이라는 이름 아래 감춰져 있던 우리 삶의 불편한 진실이 고개를 내민다. 앨리스 먼로의 소설집 『행복한 그림자의 춤』에 실려있는 이야기가 그렇다.

 먼로는 올해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일본 작가 무라카미 하루키가 수상자가 되느냐, 마느냐에 세계의 관심이 쏠렸지만 먼로는 우려를 덮고 수상자로 선택됐다. 지금껏 노벨문학상을 수상한 작가들은 장편소설을 주로 써왔다. 먼로가 수상자가 되지 못할 유일한 이유였다. 하지만 단편만을 써낸 캐나다 작가 먼로가 노벨문학상을 수상했다.

 흔히들 단편소설은 삶의 단면을 보여주는 글쓰기라고 말한다. 삶의 단면이란 무엇일까. 아마도 특정한 인물이 겪는 구체적 사건을 통해 삶의 진면목을 보여준다는 것을 삶의 단면이라고 부를 테다. 단편문학은 한국 소설에 있어서도 익숙한 양식이다.

 그런데, 먼로의 단편은 우리가 생각하는 것과는 조금 다르다. 우선 분량이 다르다. 우리 식으로 표현하자면 엽편(葉篇)소설이나 콩트에 더 가깝다고 말할 수 있다.

 가장 큰 차이는 먼로가 발생한 사건을 보여주는 게 아니라 ‘일어나는 방식’에 대해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는 것이다. 작가 스스로 말하듯 먼로는 과거가 된 사건을 재현하는 게 아니라 사건의 발생을 상상하게 한다. 날카로운 관찰과 섬세한 암시를 통해 끓는 점에 도달하기 직전에 진술을 멈추는 것이다.

 공포는 상상에서 기인한다. 어떤 점에서 먼로의 이러한 작법은 히치콕 영화의 서스펜스와 닮아있다. 아직 아무런 사건도 발생하지 않았지만 독자들은 충분히 사건을 짐작한다. 일어난 일을 확인하는 것보다 그것을 예측하는 것 자체가 더 공포스럽다. 이 예측과 짐작의 시간을 통해 일상은 낯설고 기괴한 것으로 돌변한다.

 이런 식이다. 자기 만의 방을 갖고 싶은 한 여성 작가가 작업실을 구하러 다닌다. 마침 적당한 공간을 찾게 되는데 집 주인은 그녀가 글을 쓴다는 사실에 매우 호의를 보인다. 문제는 이 관대함이 무분별한 호기심과 동전의 양면처럼 결부돼 있다는 점이다. 집주인의 친절은 점점 과도한 간섭으로 변질되고 급기야 공포스러운 집착으로 발전한다. (‘작업실’)

 아홉 살 딸아이를 거부하는 여자로부터 시작되는 ‘죽음 같은 시간’도 그렇다. 고문과도 같은 현재를 살아가는 엄마의 시간 사이로 잠시 과거의 사건이 얼굴을 내민다. 딸아이는 바닥을 깨끗이 해야 한다며 양동이에 물을 끓이고 있다. 소설 속에서 물이 끓는 순간 예상이 현실이 되리라는 짐작이 강렬한 공포로 되돌아오고 만다.

 먼로의 소설은 끔찍한 사건 바로 앞에서 멈춘다. 중요한 것은 사건의 난폭함이 아니라 그런 사건으로 구성되는 삶의 속내다. 먼로는 일상을 낯설게 함으로써 삶의 관성을 무너뜨린다. 그리고 마침내 우리는 불친절한 태도로 돌변한 삶의 맨 얼굴을 보게 된다. 먼로가 그려내는 세상이 건조하고 냉정한 이유가 여기에 있다. 작가는 냉혹한 아이러니로 가득 찬 소설 속 세계가 곧 세상의 진면목이라고 말한다.

 진실하기에 더 불편한 세상, 앨리스 먼로의 소설은 불편한 진실이다.

강유정 문학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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