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부가 국회 만나야 … 부총리 정치력이 경제 살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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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정부 들어 경제정책 조율 기능을 강화하며 경제부총리 체제를 부활시켰지만 주택시장·고용시장·가계부채 같은 민생 현안은 거의 달라진 게 없다. 역대 정부의 경제수장들은 정치권의 발목 잡기를 가장 큰 원인으로 꼽으면서도 박근혜정부 경제정책 기조에도 문제가 있다고 지적했다.

“국회는 법을 통과시켜 주지 않고, 장관들은 국정과제에 몰두하느라 경제 살리기에 못 뛰어들고 있다”는 것이다. 전직 장관 3명과 경제수석 1명에게 ‘경제 컨트롤타워’의 개선책을 들어봤다.

세종=김동호·최선욱 기자

복지 재원만 고민 … 애초에 성장 전략 없었다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애초 정부 출범 때부터 경제위기 의식이 없었다. 지난해 대선을 치를 때까지 주요한 화두가 복지와 경제민주화였다. 성장 활력을 살리는 것과 상충되는 면이 많다.

대선에서 승리해서 인수위원회를 만들었는데 어떻게 저성장에서 탈출시킬 것인지 논쟁은 하나도 없었다. 대통령의 최대 관심사는 복지 약속을 지키기 위해 재원 조달방안을 만들어내라는 거였다. 장관들은 임명 후 업무보고 때까지도 거기에 사로잡힐 수밖에 없었다. 재원 60%는 기존 재원을 절감하고 나머지 40%는 세입확충을 해서 조달한다는 거였는데 두 가지 다 아무리 쥐어짜도 어렵다. 숙제를 얼른 하고 경제 살리는 일로 못 넘어간 이유다. 뭘 좀 적극적으로 하려면 돈이 더 들어갈 수밖에 없는데 숙제에 매달려 끙끙거리느라 시간을 다 보내고 있다.

처음부터 경제 살리기가 최우선 순위가 아니었다. 새누리당이나 민주당이나 다 마찬가지다. 기업인들이 줄줄이 인신 구속이 되고 있는데, 고강도 세무조사도 이어지고 있다. 저러는 정부에 누가 성장하려는 정부라고 생각하겠나. 국회에서도 그런 얘기를 해주는 사람이 없다. 정부는 말로만 할 게 아니라 협상에 매달려야 한다. 여당도 야당에 줄 건 주면서 해야 한다. 우리나라 경제를 활성화시키려면 장관들이 뛰어야 하는데, 우리 장관들은 진짜로 긴장을 안 한다.

총수 구속, 고강도 세무조사 … 기업 위축시켜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정책을 결정하는 거버넌스(의사결정구조)가 큰 문제다. 제왕적 대통령 권한이라고 하는데 국회 앞에서는 그렇지 않다. 국회가 입법을 뒷받침해 주지 않으면 아무것도 되는 게 없다. 이런 구조를 이해 못하는 국민 신뢰만 떨어졌다. 국회가 제대로 움직여 주지 않으면 행정부가 아무것도 못한다. 국정감사 기간 동안 행정이 올스톱된 것을 보라. 민생법안은 하나도 심의하지 않고 있다. 이런 부분이 정상화되지 않으면 경제부총리 10명 데려와도 안 된다. 이렇게 난마처럼 얽혀 있을 때 리더십도 중요하다. 시장에 나가보면 국세청·세무서의 강도 높은 세무조사는 계속되고 기업들은 전전긍긍한다. 기업들이 줄줄이 도산하고 법정관리에 들어가면서 경제가 전방위로 무너지고 있는데 국제경제 핑계만 댈 수는 없다. 정부는 국회와 일전을 치러야 한다. 증세를 못하고 복지공약을 이행해야 한다면 솔직히 확대재정으로 가겠다고 분명히 말하고 국회에 얘기해야 한다. 지금은 죽도 밥도 아니고 상황이 상충되고 모순된다. 청와대와 숙의해서 대통령을 설득해야 한다. 제일 급한 것은 일자리 창출이다. 공공부문에 시간제를 늘린다는데 실효성이 없다. 일자리는 민간부문에서 늘어나야 한다. 경제민주화 일도 답답하다. 골목상권 진출에 대기업 단속한다더니 납품업자 일자리만 줄고 있다.

야당 설득 위해 여·야·정 포럼 등 대화 필요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경제회복이 더딘 것은 대외환경 탓도 있지만, 경제하는 사람들의 마음이 불안하고 불편한 탓이 크다. 민간이 투자하고 일자리를 만들어야 하는데 모두 위축돼 있다. 불똥이 어디로 튈지, 경제민주화는 언제까지 갈지 알 수 없으니 관망할 수밖에 없다. 새 정부 들어 경제정책 반짝 내놓았다고 경제가 바로 좋아지는 것은 아니다. 삼성 같은 곳도 어디로 가야 할지 전전긍긍하고 노키아의 전철을 밟는 건 아닌지 고민이 많다. 기업들이 집중하고 노력하도록 하는 분위기가 아니다. 언제 세무조사를 당할지 불안해서다. 경제운용의 핵심은 부총리에게 전권을 주고 책임을 묻는 거다. 기초연금은 저소득 노인에 대한 소득지원인데 연금이란 말을 붙여서 혼란을 초래했다. 그 과정에서 기획재정부는 무슨 역할을 했나. 복지정책도 굉장히 중요한 경제정책인데도 말이다. 대통령은 기본적 방향이나 지침만 주면 자신감과 역량을 갖고 부총리가 이끌고 가야 할 텐데 그런 시스템이 보이지 않는다. 그러니 현오석 부총리만 뭇매를 맞는 거다. 야당 설득에도 문제가 있다. 2001년에는 경제문제에 관해 여·야·정 경제포럼을 두 차례나 열어서 관련법안을 추진시켰다. 내 말이 맞는데 당신들이 안 따른다는 식으로는 대화가 안 되고 압박밖에 안 된다. 경제는 한번 삐걱하면 어디로 추락할지 모른다.

일본처럼 거시경제정책 과감하게 추진해야
현정택 전 청와대 경제수석

우리 경제도 세계경제와 같이 움직인다고 봐야 한다. 그러나 일본처럼 거시경제정책을 과감하게 추진하지 못한 문제는 있다. 경제지표 숫자는 일부 좋아지고 있지만 국민 입장에서 체감할 수 있는 수준은 아니다. 투자를 유도하려면 규제를 푸는 게 중요한데. 이 정부 들어서 한 것 중에 의미 있는 건 국토교통부 주도로 입지규제 푼 거랑, 산업단지 조성하겠다는 것 정도다. 그거 푼 건 좋은데 거기에 공장이나 연구소가 들어서서 업무가 돌아갈 때까지 시간이 몇 년 걸린다. 지금은 솔직히 부총리가 어떤 규제를 풀려고 해도 잘 풀리지 않는 세상이다. 서로 이해가 충돌하는 이익집단들이 국회의원과 결탁해서 막고 있으니, 정부 입장에선 A쪽으로 가려고 하면 의원들이 반대하고 그래서 B쪽으로 가려고 하면 또 다른 의원들이 반대한다. 그냥 시행령으로 해결할 수 있는 사안도 다 국회 손을 거쳐야 한다. 그런데 그런 문제까지도 다 해결하는 정치력을 발휘하는 게 부총리의 역할이라면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영리병원으로 불리는 투자개방형 병원 같은 게 대표적이다. 서비스산업 규제 완화의 핵심인데 반대의견 가진 세력을 극복하지 못하잖나. 영리병원 같은 식으로 기존의 패러다임을 싹 바꾸는 게 중요한데 그걸 깨뜨리지 못한다. 이를 부총리가 정치력으로 풀어내야 경제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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