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처 조율도 국회 설득도 고장난 정부 경제 사령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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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달 10일. 현오석 부총리 겸 기획재정부 장관과 유정복 안전행정부 장관, 박원순 서울시장이 비공개로 두 시간 동안 담판을 벌였다. 취득세 인하에 따른 지방세수 감소분 보전 방안을 놓고 현 부총리가 조율에 나선 자리였다. 하지만 지방자치단체의 반발로 협상이 결렬되면서 다음 날로 예정됐던 기자 브리핑도 무한정 연기되는 파행이 빚어졌다. 지방세수 보전 방안은 진통 끝에 예산안에 맞물려 지방에 재정 지원을 해주기로 하면서 보름 뒤에야 확정됐다. 6월 말 취득세 잠정 인하조치 중단으로 부동산 거래가 막힌 것을 해소하기 위한 논의가 시작된 지로는 석 달 만이다. 이 과정에서 박근혜 대통령까지 나서 부처 간 불협화음을 질타했다. 그럼에도 취득세 인하 법안은 국회에서 통과되지 않아 무용지물이 됐다. 이 여파로 전셋값 고공 행진이 계속되면서 중산층과 서민의 삶을 짓누르고 있다.

 현오석 부총리가 사령탑을 맡고 있는 정부 경제팀의 ‘경제 컨트롤 타워’가 제대로 작동하지 않고 있다. 최근 본지와 인터뷰한 진념 전 부총리 겸 재정경제부 장관, 강봉균 전 재정경제부 장관, 윤증현 전 기획재정부 장관, 현정택 전 경제수석의 공통된 목소리다. 현 부총리의 컨트롤 부재는 비단 취득세 인하 문제뿐만이 아니다. 지난달 진영 당시 보건복지부 장관의 사퇴로 이어진 기초연금 지급 대상 축소 논란 때도 현 부총리는 이렇다 할 역할을 하지 못했다는 지적이 나왔다. 진념 전 부총리는 “복지정책도 굉장히 중요한 경제정책인데, 그 과정에서 기재부는 무슨 역할을 했나”라고 반문했다. 부총리가 적극적인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지 못한다는 얘기다.

 인천시가 허가를 안 내주고 있는 투자개방형 병원(영리병원) 문제도 마찬가지다. 현 부총리는 “법은 마련됐는데 인천시 반대로 추진하지 못한다”는 말만 되풀이하고 있다. 이에 대해서는 기재부 내부에서도 불만이 표출됐다. 기재부 관계자는 “차라리 ‘영리병원 설립을 서두르지 않고 있다’고 말하는 게 솔직할 것 같다”며 “중앙정부의 부총리가 지방자치단체장의 반대로 일을 추진하지 못한다는 것을 공개적으로 이야기하는 것은 격에 맞지 않는 것 같다”고 전했다.

 전 경제 수장들은 특히 새 정부 들어 8개월이 지났는데도 과도한 경제민주화 입법과 고강도 세무조사가 진행되면서 경제 살리기가 정책 후순위로 밀려나 있다고 질타했다. 강봉균 전 장관은 “장관들이 (공약이행) 숙제로 끙끙거리느라 경제 살리기로 못 넘어가고 있다” 고 지적했다.

 현 부총리는 취임 후 8개월 동안 투자활성화를 외쳐왔다. 마침 25일 발표된 3분기 경제성장률이 괜찮았다. 지난 2분기에 이어 전기 대비 1.1%의 회복세를 보였다. 경제가 좋은 흐름을 보이기 시작한 것이다. 그러나 체감경기는 크게 달라진 게 없으며 낙관은 이르다. 2조원의 투자가 걸린 외국인투자촉진법안, 다주택자 양도세 중과 폐지 법안 등 102건이 여야 정쟁(政爭)에 발목이 잡혀 있다. 문제는 경제인데, 경제 살리기 법안들이 국회에서 낮잠만 자고 있는 상황이다. 이를 의식한 듯 현 부총리는 28일 기재부 확대간부회의에서 절박감을 토로했다. “우리 모두는 벼랑 끝에 걸린 버스를 운전하는 심정으로 행동해야 한다”며 102개 법안의 입법화를 촉구했다. 그러나 현 경제팀의 대국회 설득 역시 부족하다는 지적이다.

 대통령과 국무총리도 이날 한목소리로 경제 활성화를 강조했다. 박 대통령은 ‘2013 기업가정신 주간 기념식’에서 윤상직 산업통상자원부 장관이 대독한 축하 메시지를 통해 “정부는 불필요한 규제를 과감히 걷어내고 투자가 살아나고 일자리가 늘어나는 건강한 경제생태계 구축에 지속적으로 노력할 것”이라고 말했다. 정홍원 국무총리도 대국민 담화에서 “국회 계류 중인 경제 활성화 법안들이 하루 빨리 처리될 수 있도록 국회와 정치권의 협력이 필요하다”고 호소했다.

진념 전 부총리는 “(정부와 여당이) 내 말이 맞는데 당신들이 안 따른다는 식으로는 대화가 안 되고 압박밖에 안 된다”며 “경제문제에는 여야가 따로 없으니 여·야·정 대타협을 통해 경제 살리기에 나서야 한다”고 말했다.

세종=김동호·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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