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만의 밀사행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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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빅토르·루이스」가는 곳에 소문나지 않는 곳 없다.』
근자 미주간지 「뉴스위크」는 이렇게 보도하고 있다. 금테 안경에 흐트러진 머리칼에, 애매한 미소를 짓고 있는 사나이-. 「소련기자」라는 「타이틀」을 가진 그의 본명은 「비탈리·예프게니비치·루이」.
그가 세상에 알려진지는 몇 년 안된다. 67년 「루이스」가 「런던」시에 나타나자 서방기자들은 그를 주목하기 시작했다. 당시 소련은 「스탈린」의 딸 「스베틀라나」가 서방으로 망명, 회고록까지 발표하자 몹시 심통해 있었다. 「루이스」는 이때 「스베틀라나」회고록이라는 것을 가지고 다녔다. 물론 이것은 소련의 관제위작이었다.
작년에 세계를 떠들썩하게 만든 「흐루시초프」회고록과도 그는 관련이 되어있다. 바로 그 「루이스」가 일주일전 「이스라엘」을 방문했다. 아니나 다를까 「이스라엘」은 멀지않아 소련과 외교관계를 개선하리라는 관측들이 쏟아져 나오고 있다.
「루이스」는 이미 그런 전력을 쌓은 적이 있었다. 68년10월 돌연 소련에 나타난 것이다. 엄연히 소련국적과 시민권을 갖고있는 그가 자전중국에 입국할 수 있었던 것도 이상하지만, 그보다도 『왜 나타났느냐?』는 것이 더 큰 관심을 불러일으켰다. 끝내 그 수수께끼는 풀리지 않고 말았다.
그러나 지난해 봄, 그는 또다시 은밀하게 대만을 방문했다는 소문이 나돌았다. 역시 이때에도 그 이상은 알려진바 없었다.
그 무렵 서독주간지 「슈피겔」은 그의 정체를 윤곽이나마 폭로했었다. 2차 대전 당시 서방을 전전하며 서방측 외교사절단의 사무원으로 일한 경력이 있다. 「스탈린」은 그의 경력을 의심했던지 25년 강제노동형을 내렸다. 그러나 58년에 출옥, 「프랑스」여인과 결혼하고, 이름도 「프랑스」풍으로 「빅토르·루이스」라고 고쳤다.
그러나 「슈피겔」지는 그가 소련공산당중앙위 직속 특별정보기관인 「오소비에·포루체니아」의 요인이라고 거의 단정적으로 추측했다. 아무튼 국제정치의 막후에서 흑색 「패스포트」를 가지고 신경전의 미로를 헤치며 다니는 복면의 사나이임엔 틀림없다.
바로 21일자 대북 발 외신이 소련과 대만의 동맹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평지돌출은 아니다. 어딘가 「루이스」의 행각과 일맥이 닿은 것도 같다.
더구나 장개석 총통의 후계자로 지목되는 장경국(행정원 부원장)은 14세부터 10여년을 소련서 교육받은 진보적인 소련 통이며, 「러시아」여자를 부인으로 살고 있다.
일연의 설들은 노총통시대의 종언을 보는 것 같은 무상감마저 자아낸다. 그는 지금 『우리의 적이 아닌 자는 누구도 우리의 친구』라는 교훈을 남겨줄 뿐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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