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5)|38선 돌파와 북진(1)|월경 논쟁(상)|6·25 20주…3천 여의 증인 회견·내외자료로 엮은 다큐멘터리 한국 전쟁 3년

중앙일보

입력

지면보기

종합 03면

유엔군은 9월말까지 38선 이남에서 대체로 북괴군을 일소하였다. 10만 침략군은 3개월만에 궤멸되어 불과 2만여 명의 패잔병력만이 38선을 넘어 북으로 후퇴했다. 이제 문제는 유엔군이 38선을 넘어 북진을 계속하느냐, 아니면 북괴의 남침 시발점인 이 경계선에 그대로 머무르느냐를 결정해야 할 판이었다.
이래서 온 세계의 시선은 맥아더 원수의 빛나는 인천·서울 탈환이 끝난 후, 이제는 38선에 쓸리게 되었다.
이 문제에 대한 한국 정부측의 입장은 처음부터 명백하여 이론의 여지가 없었다. 이 기회에 숙원인 북진통일을 이룩하자는 것이 온 겨레의 열망이었고, 행여나 유엔군이 38선에서 진격을 멈출까 신경을 곤두세웠다. 최악의 경우단독 북진까지도 불사할 생각이었다.

<추적권 내세워 합법주장>
그러나 한국 전쟁에 있어서 다른 문제와 마찬가지로 이 중대 문제의 열쇠도 역시 미국이 쥐고 있었다. 미국의 정치 및 군사 전문가들은 8월 중순께부터 이 문제를 검토하기 시작했다. 이 때는 바로, 낙동강 교두보에서 적의 8월 공세를 일단 저지했을 대였다. 미국은 명예로운 종전책으로서 38선에 정지하여 정치적 타결을 모색하는 안과 차제에 있던 김정일 괴뢰정권을 타도하고 한반도에 자유로운 민주 통일정부를 수립하기 위해 시선을 돌파, 북진을 계속한다는 두 가지 안을 연구 검토했다.
이 두 안을 놓고 전자와 후자를 각각 주장하는 측 사이에 논쟁이 거듭되었다. 비둘기파로 불리는 전자의 주장은 38선을 넘는다면 소련과 중공의 개입을 초래하여 필연적으로 전쟁이 확대 장기화하여 3차 대전을 유발할 염려가 있다는데 근거를 둔 것이었다. 주로 정치적인 고려를 감안한 것으로 국무성과 일부 합참본부가 이 주장에 동조하였다. 이에 반하여 독수리파인 월경 주장자들은 보다 더 현실적인 군사적 입장에 바탕을 둔 것으로 이는 미 극동군사령부의 지배적인 견해이기도 했다.
사실 맥아더 원수는 미국의 한국 참전직 후부터 38선은 의당 넘어야할 선으로 생각한 것 같다. 군사작전상 이 경계선을 별로 개의치 않았다는 것이 여러 기록에서 엿볼 수 있다. 후자의 독수리파 주장을 요약해 보면…
(A)적을 추격하고 있는 유엔군을 38선에서 일제히 멈추게 할 수 있을지 의문이다. 군사적으로 어려울지 모르며 특히 북진통일에 불타있는 한국군을 정지시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
(B)38선의 돌파북진은 계속 추적권의 이론으로 보아 합법적이다.
(C)「유엔」군이 38선에 정지한다면 북괴군은 언제든지 재 남침할 수 있다.
북괴군의 주력은 궤멸됐지만 아직 신병으로 재편할 능력은 남아있다.
예상되는 적의 재침을 막기 위해서는 유엔군의 계속 주둔이 필요한데 유엔군을 무기한 한국에 머무르게 할수는 없다.
(D)「유엔」의 목적은 당초부터 한국의 통일국가 수립에 있던 것으로 38선을 항구적으로 인정한 적은 없다. 유엔의 후원으로 수립된 한국정부가 이미 38선의 돌파결의를 밝힌 이상, 이제 38선은 법적으로 존재치 않는다.
(E)38선을 넘지 않으면 자유세계는 이 경계선을 영구적인 합법적인 국경으로 인정하는 결과가 된다.
(F)한국전쟁에서는 상당수의 전쟁범죄인이 생겼는데 이들을 체포하여 재판에 회부하기 위해서는 38선을 넘어야 한다.
(G)유엔 해공군은 전쟁 초부터 북한전역에 대해 작전을 전개하고 있다. 지상군만이 북진하지 말라는 이론은 있을 수 없다.
(H)6월27일의 유엔 안보이사회 결의는『「이 지성」에서의 국제평화와 안전을 유지하기 위해 유엔 회원국은 필요한 원조를 제공한다…』라고 규정하고 있으며, 이는「맥아더」원수가 북진할 수 있는 법적 권한을 부여했다고 해석해야할 것이다. 그리고 그 유엔 결의에 언급된「이 지역」 (in thearea)은 한반도 전역을 지칭한 것으로 해석해야 한다.

<소·만 국경 작전은 한국군에>
월여에 걸친 38선 돌파여부의 논쟁은 9월11일에 국가안전보장회의에서 일단 결론에 도달했다. 내용은 중공과 소련의 개입 위험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 지상작전을 북한에 확대한다」는 것으로, 비둘기파와 독수리파 주장을 절충한 타협안처럼 보였다. 합참본부는「트루먼」대통령의 승인을 얻고 다음과 같은 작전지침을 바로 9월15일에 인천 앞 바다에서 상륙 전을 지휘하고 있는 맥아더 원수에게 전달했다.
(A)귀관의 군사목표는 괴뢰군의 섬멸에 있다. 이 목적을 달성하기 위하여 귀관은 지상작전을 38선 이북에서 지도해도 좋다
단 어떤 상황에서도 귀관의 육해공군은 소련과 중공 국경을 넘어서는 안 된다.
(B)불필요한 자극을 피하기 위해 소련과 접경하고 있는 동북부와 한만 국경지대에는 한국군이외의 부대를 진공시켜서는 안 된다.
(C)만주와 소련 영에 근접한 지역에서는 해·공군의 작전을 금한다.
(D)북한에서 괴뢰군의 조직적 저항을 분쇄한 다음에는 잔여의 괴뢰군의 무장 해제와 항복조건의 집행에는 주로 한국군을 담당시킬 것.
(E)북한지역의 행정은 정세에 따라 결정한다.
(F)북한 진공계획 세목은 합참 본부에 제출하여 승인을 받아야 한다.
그리고는 부기로, 소련과 중공이 개입하려는 징조나 위협이 없는 경우에 한해서 맥아더 원수는 지상작전을 38선 이북에 확대하는 북한점령 계획을 작성해도 무방하다. 그러나 소련이나 중공이 개입할 경우에는 38이북에서 지상작전을 해서는 안 된다. 여하간 38선 돌파는 추후 명령하겠다고 못박아 놓았다.

<맥아더, 원산 상륙안 제안>
38선 돌파문제에 관한 이와 같은 미국정부의 최고 방침은 누가 보더러도 불투명한 결함이 있었다. 그것은 38선 돌파와 북한점령을 허가하면서도 여기에「중공과 소련개입이 없는 한」이란 조건을 붙이고 있다는 점이다.
다른 공산국가의 한국전쟁 개입여부와 이에 대한 대비책 등에 관한 최고 결정은 현지 군사령관이 아니라「트루먼」대통령 자신이 취할 문제 있다. 미 극동사령부는 그런 증대문제에 관해 정보는 입수하지만 이를 평가해서 어떤 결정을 내릴 입장에는 놓여있지 않았다. 당연히 「워싱턴」에서 정치적으로 결정할 문제이지 동경에다 군사적 결정으로 위임할 성질의 것은 아니었다.
여하간 9월15일의 지시를 받은 맥아더 원수는 다음과 같은 북진 계획을 작성하여 합참본부에 제출했다.
①미제8군은 현 편제대로 북진, 평양을 향하며, 적도는 미10단을 원산에 상륙시켜 8군과 협공한다.
②안주와 흥남을 잇는 선 이북의 작전은 한국군에 한정시킨다.
③8군의 38선 돌파 개시는 10월15일과 30일 사이의 적당한 일자를 택한다.
그런데 인천 상륙 작전이 순조로이 진전되어 서울이 수복되기 하루전인 9월27일에 합참본부에서는 다시 맥아더 원수에게 다음과 같은 새로운 혼령이 전달됐다.

<첫 북진안 묵살, 재작성 지시>
『「유엔」군 총사령관의 임무는 북한에 있는 무장 집단을 섬멸하고 가능하면 한국에 민주적 통일국가를 수립하는데 있다. 이를 위해 귀관은 38선 이북의 한국에서 지상작전을 지도해도 좋다.
단 이 훈령은 최종적인 것이 아니며 경세의 변화에 따라 수정될 수 있다. 이 훈령은 실천은 중공군이나 혹은 소련군이 북한에 진주하지 않은 것이 확인되거나 또는 진주의 의사가 표명되지 않았을 경우에 한 한다. 그러나 소련이나 중공의 개입 가능성은 크다고 생각된다. 이에 대한 정보수집에 각별히 주력할 것이며, 만약 개입 징조가 있으면 즉시 보고해 주기를 바란다.
또한 정치적 입장에서 어떤 부대도 중공과 소련국경을 넘어서는 안되며 한·국군 이외의 군대를 중공국경이나 동북부에 진격시켜서는 안 된다. 유엔군 총사령관은 즉시 북한진공 작전 계획을 작성, 합참본부장의 승인을 받도록 할 것.
맥아더 원수는 27일 훈령이 소련 중공개입에 관한 제한을 15일 훈령의「부기」와는 달리 훈령「본문」중에 명기하고 다시 작전 계획제출을 요구한 것은 앞서 제출한 북한진공 계획이 승인되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북진의 최종결정을「워싱턴」이 끝까지 쥐고 자기에게 일임하지 않은 것으로 판단했다. 이 새 훈령은「워싱턴」측의 주저와 적에 대한 양보의 시초라는 생각에서 맥아더의 가슴은 부글부글 끓었다.
원수는 이 때 울분을 그의『회고록』(The Reminiscences of Douglas MacArhur)에 다음과 같이 기록하고 있다.

<맥아더·트루먼, 대공관 틀려>
『이 한국전쟁은 공산주의자들의 아시아 정복의 제일보로서 침략의 원천은「모스크바」 와 북평인 것이다. 그리고 현재 그 원흉들과 대결하고 있다. 따라서「아시아」에서 근본적인 평화를 가져오려면 한국에서의 우리 군사 행동에 제한을 가해서는 안 된다. 만약 중공이나 소련이 개입한다하더라도 이를 격파함으로써 한국을 통일하고, 공산주의자들의 아시아 정복의 뿌리를 뽑아야한다. 소련 중공이 북한에 들어오고 유엔군이 38선에서 정지한다면 다시 공산군은 침략을 되풀이할 것이다. 「아시아」에 항구적인 평화를 확립하는 것은 결국 유럽의 평화도 가져오는데 이것을「워싱턴」당국자들은 모르고 있다.』 그러나 「트루먼」대통령은 맥 원수와는 전반대의 견해를 가지고 있었다.
그의『자서전』(Memoirs by Harry S.Truman)에는 이 문제가 이렇게 언급돼 있다.
『공산주의자들은 북괴를 앞잡이로 내세워 유엔과 특히 미국의 동향을 탐지하려하고 있다. 소련이나 중공이나 다같이 한국전쟁을 전면전으로 확대할 의도가 없는 것 같지만, 전쟁이란 것은 어떤 우발적 사건으로 확대될지 모른다.
세계대전의 위험이 가장 큰 소련 중공과의 직접 교전은 절대 피해야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이편이 군사행동을 제한하면 상대방도 제한할 테니까 자연히 현재의「제한범위」에서 전쟁을 끝낼 수 있다. 「맥아더」원수는 이점을 이해하지 못하고 있을 뿐만 아니라 이해하려고 하지도 않고 있다.』
이 같은 두 사람의 공산주의를 보는 눈이나 전쟁관과의 차이에다 정치문제가 겹쳐 결국은 맥아더 해임이란 비극을 가져오고 말았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