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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컷칼럼] 백선엽 장군과 이승만·트루먼 대통령 동상 한 곳에 선다
6·25전쟁 향방 바꾼 경북 칠곡 다부동 전투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 남침으로 대한민국을 단숨에 적화하려던 김일성은 그해 7월 20일 충북 수안보까지 내려왔다. 밀리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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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선엽 장군과 이승만·트루먼 대통령 동상 한 곳에 선다[장세정 논설위원이 간다]
━ 6·25전쟁 향방 바꾼 경북 칠곡 다부동 전투 장세정 논설위원 1950년 6월 25일 새벽 기습 남침으로 대한민국을 단숨에 적화하려던 김일성은 그해 7월 20일 충북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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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크라 공격에 러 흑해함대 사령관 사망…580일차 항전 계속된다 [타임라인]
━ 러시아-우크라이나 전쟁(키이우 시간, 한국시간-6시간) ※2022년 2월24일 러시아의 우크라이나 침공 1일차부터 매일 업데이트 중입니다. ▶9월 26일 침공 5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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2년 전 찾은 정강이뼈…6·25국군 전사자 故 장기수 일병, 70여년 만에 집으로[포토버스]
국방부 유해발굴감식단(국유단)은 2020년 5월 강원도 양양군 가라피리에서 발굴된 유해의 신원이 6·25 당시 3사단 소속으로 참전했던 고(故) 장기수 일병으로 확인됐다고 2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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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칫국부터 마신셈…북진 그 뒤, 한·미 '평양 통치권' 다퉜다 [Focus 인사이드]
━ 너무나 컸던 한국과 미국의 시각차 1950년 10월 1일. 감격스러운 북진이 개시됐다. 그런데 얼마 지나지 않아 아군이 수복한 북한 지역의 통치를 놓고 한국 정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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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한은 왜 유해 송환 제의를 거부했을까…씁쓸한 6·25 상흔
━ 길 위에서 읽는 한국전쟁 〈1〉 길을 나서며 한국전쟁은 1953년 7월 27일 정전됐지만 잊힌 전쟁이 아니다. 눈에 보이는 흔적으로도 많이 남아 있다. 잘 알려진 임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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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지 않은 건 6·25전쟁 때문이었다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항일전쟁 시절 미국 화교들이 미국인들에게 모금한 돈으로 중공 근거지 옌안에 세운 뤄싼지(로스앤젤레스의 음역) 탁아소는 중공과 미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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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보균의 현장 속으로] 신미양요 때 강화도 상륙·침공한 미 해병…6·25 땐 인천 상륙, 서울 구출했다
━ 리더십의 결정적 순간들-6·25 70주년, 파란곡절 한·미 역사 색다른 이야기 콴티코 해병대 박물관의 신미양요 전시실. 그림 제목 ‘Storming Fort Choji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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마오쩌둥 “군 개혁 시급하다”…펑더화이 극비리 귀국 전령
━ 사진과 함께하는 김명호의 중국 근현대 양더즈(오른쪽)와 양융(왼쪽), 양청우(가운데)는 나이·경력도 비슷했다. 3양이라 불렸다. 양더즈는 훗날 총참모장까지 지냈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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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미국이 한반도 포기를 고민했던 순간 의외의 반전은
━ Focus 인사이드 6ㆍ25전쟁 ‘낙동강지구전투 전승행사’가 열린 낙동강 둔치에서 201특공여단 장병들이 당시 국군과 북한군으로 분장해 치열한 전투를 재연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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맥아더 장군 크리스마스 앞두고 고향 못간 이유는
차가운 겨울바람이 불어오는 11월 말이면 생각나는 전투가 있다. 미 해병대 제1사단이 절대적인 병력의 열세와 혹한의 위험 속에서 중공군 제9병단의 포위망을 뚫고 죽음의 통로를 벗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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상대 굴복 강요 3년 끈 실랑이, 스탈린 사망으로 물꼬
1953년 7월 27일 판문점에서 정전협정 문서에 서명하고 있는 윌리엄 해리슨 2세(왼쪽) 유엔측 대표와 남일(오른쪽) 공산측 대표. [중앙포토] 무릇 싸움이나 전쟁은 시작하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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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공군, 한국전 참전 두 달 전 이미 전쟁예산 짜”
추이 박사“중국은 북한의 6·25전쟁 계획과 준비 과정에 알려진 것보다 더 일찍, 그리고 깊숙이 개입했다.” 6·25전쟁 참전국인 중국의 입장에서 참전의 배경과 목적을 추적한 데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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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열린 광장] 이승만은 국군의 ‘단독 북진’을 명령했다
김일주이승만박사 기념사업회 사무총장고려대 교육대학원 겸임교수 10월 1일은 대한민국 국군의 날이다. 1950년 9월 15일 인천상륙작전이 성공적으로 끝났고 9월 28일 서울도 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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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민군·국군 두 번씩 오간 ‘기막힌 인생’
"중앙선데이, 오피니언 리더의 신문" 또다시 6월이다. 61년 전 이 땅에서 동족상잔의 비극이 시작된 달이다. 한국전 참전용사 최원팔(83·사진)씨는 해마다 6월을 앓는다. 농사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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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북으로 가자”며 총 들이댄 인민군, 나도 총을 겨눴다
최원팔씨가 현충일인 6일 왜관 낙동강변에 있는 칠곡군 무공수훈자 전공비를 찾았다. 좌측 상단에 그의 이름(崔源八)이 보인다. 최정동 기자 강제징집당했지만 인민군으로 복무한 건 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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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우용의 근대의 사생활] 결국은 맞아떨어진 근대의 참언들
1951년 5월, 38선을 돌파해 북진하는 화랑부대 장병들. 1950년 6월 25일 북한군이 38선을 넘어 남침했고 10월 1일에는 우리 국군이 38선을 넘어 북진했다. 그러나 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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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때 오늘 - 6·25전쟁 ③ “미국은 피를 흘리기로 결정했다”…유엔 안보리, 참전 결의
1950년 6월 27일 안보리 474차 회의 표결 순간. 미국의 결의안을 지지하는 중국(대만)·쿠바·에콰도르·프랑스·노르웨이·영국·미국 대표 7개의 손이 6·25전쟁의 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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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진격 길에 나서다
세 시간쯤 흘렀을 것이다. 나는 미 1군단의 밴 브런트 참모장이 작전계획 수정 작업을 마칠 때까지 기다리고 있었다. 마침내 작업을 마친 밴 브런트가 내게 수정한 작전명령서를 쥐여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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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서울 거쳐 평양으로 (72) 선봉에 서고 싶은 군인의 마음
낙동강 전선 반격 작전으로 북진을 거듭한 국군 3사단은 10월 1일 38선 돌파에 성공했다. 3사단 장병이 지나자 주민들이 태극기를 들고 나와 격려하고 있다. [미 육군부 자료]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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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6·25 전쟁 60년] 적유령 산맥의 중공군 (26) 38선 북방 방어 거점을 확보하라
1951년 3월 말 이제 38선을 넘어야 할 때다. 그러나 미국 워싱턴의 정가에 형성된 기류는 분명히 우리와는 달랐다. 한마디로 말하자면 뭔가 멈칫하는 분위기였다. 그들은 북진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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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충! 성!" 대한민국은 우리가 지킨다
10월의 첫째날인 오늘은 국군의 날입니다.(국군의 날이라고 해서 '우리의 군'이 쉬는 건 아니라는 거 다 아시죠?) 문민정부가 들어서고 또 공휴일에서 빠지면서 그 영향력이 많이 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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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2월의 호국인물] 송요찬 장군
전쟁기념관이 12월의 호국인물로 선정한 송요찬(宋堯讚.1918~80)장군은 한국전쟁 때 수도사단장으로 명성을 떨친 인물이다. 충남 청양에서 출생한 그는 1946년 5월 육군소위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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8월의 호국인물에 김백일 중장
전쟁기념사업회 (회장 洪恩杓) 는 7일 '8월의 호국인물' 로 6.25 당시 전사한 고 (故) 金白一 중장을 선정, 발표했다. 1917년 만주 북간도에서 출생한 金장군은 만주군 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