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거 기 물가 대책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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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선거 철의 행정적 공일 상태를 이용해서 각종 물가가 갑작스런 오름세를 보이고 있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의 경우 지난 19일 하루 사이에 쇠고기 6백g당 5백 원 하던 것이 6백 원으로 20%가 올랐다하며, 쌀값도 고시 가격 가마당 6천4백 원에 비해 실제 소매 시세는 7천5백 원으로 올랐다. 그밖에도 대중 음식인 설렁탕 값이 1백 원에서 1백50 원 내지 1백80 원으로 올랐으며 이에 덩달아 냉면·비빔밥값 등도 일제히 20∼30%씩 올랐다고 한다.
선거철만 되면 각종 자금 방출이 집중되고 있을 뿐만 아니라 행정 질서가 문란해지는 풍토 적인 증상을 반복하고 있는 우리의 현실에서 이번 선거 기를 맞아 각종 물가가 기다리기나 했던 것처럼 뜀 새를 보인다는 것은 어쩌면 자연스러운 것인지도 모를 일이다.
각종 공사의 집중 착공, 선거 자금의 방출 등으로 구매력이 팽창함에 따라서 물가가 오를 요인이 누적되고 있는 데다 이에 더하여 행정 당국의 집무자세에 있어서 마저 선심이 곁들여 일상적인 업무마저 소홀히 하는 경향이 없지 않기 때문에 업자들로서는 물실 호기라고 앞을 다투어 가격 인상을 할 수도 있다는 것이다. 과거의 경험에 비추어 보더라도 선거 기에는 행정적인 물가억제 수단이 좀 체로 동원되지 않았던 것이므로 선거기만 되면 밑져야 본전이란 식으로 일단 가격을 올려놓고 정부의 눈치를 살피는 버릇이 붙게된 것이다.
그러므로 작금의 물가 동향은 이러한 풍토 적인 병폐가 이번 선거에서도 어김없이 나타난 것으로 보아야할 것이며, 그 좋은 예로서 서울시 당국의 책임 회피적인 해명을 들 수 있을 것 같다. 보도에 따르면 서울시는 상공 회의소가 물가조사를 1주일 전부터 하지 않아서 가격 상승을 알지 못했다고 밝히고 있다는 것이며, 한술 더 떠서 물가 문제는 기획원의 소관이라고 발뺌을 하는 듯한 발언조차 있었다고 전해진다. 이러한 보도가 사실이라면 우리는 서울시 당국에 몇 가지 반문을 제기하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우선 상공 회의소가 물가조사를 하지 않아 물가가 오르고 있음을 모르고 있었다는 따위 해명은 적어도 책임 있는 시 행정 당국으로서 있을 수 있는 자세인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다음으로 서울시 당국은 기획원이 물가 행정을 관장하고 있으니까 관계없는 것처럼 해명하고 있다는데, 그렇다면 서울시가 기획원 당국에 적절한 물가 대책의 강구를 건의할 의무가 있는 것이 아닌가 묻지 않을 수 없는 것이다.
물론 그렇다해서 서울시 당국이 물가 문제를 전적으로 책임질 일이라고 우리가 주장하는 것은 아니다. 보다 근원적인 면에서는 중앙 정부의 책임이 더 크다는 데에는 이론의 여지가 없는 것이다. 왜냐하면 물가 문제에 관한 중앙 정부당국의 책임은 비단 위에서 지적한 몇몇 생필 물가에 국한될 성질의 문제가 아니기 때문이다.
종래 정부는 물가 문제를 다룸에 있어 흔히 정치적 고려 등을 앞세움으로써 순 경제적인 견지에서의 물가 형성「메커니즘」을 왜곡하는 물가 정책을 집행하는 타성에 젖어있었던 것인데 선거 기를 맞아 그러한 행정적 통제가 또 다른 정치적 고려 때문에 여의치 않게 되자 웬만한 생필 물자 값은 불가피하게 들먹일 수밖에 없게되는 것이다.
이 사실은 나아가 일단 선거가 끝나면 중요한 공산품 가격 전반에 걸친 행정 통제의 곤란을 가중케 한다는 점에서 우리 나라 물가 정책에 있어서의 악순환을 예비하는 소이 임을 또한 외면해서는 안될 것이다.
요컨대, 선거 철의 물가 상승은 직접적으로는 행정 관료들의 자세변화와 팽창된 자금 방출에 기인되는 것이라 하겠으나 그보다도 더 본질적으로는 물가 문제를 정상적인 경제 운영의 「메커니즘」과 떠나서 다루어오던 타성 때문이라는 것이다. 선거 기일수록 정부 당국의 물가 문제에 대한 성실한 「어프로치」를 촉구하지 않을 수 없는 소이 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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