귀화·비자 '쇄국정책' 외국인재 영입 막는 벽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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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티미디어 인식 기술 업체인 엔써즈에서 팀장으로 일하는 인도인 찬드라 세크하 드히르(33)의 가장 큰 고민은 비자다. 그는 “두 달 된 아이를 한국에서 키우려면 매년 비자를 갱신해야 한다”며 “신분이 불안하다 보니 육아 도우미를 구하는 것도 쉽지 않다”고 말했다. 한국에 아예 정착하려고 국적 취득(귀화)을 결심하면 벽은 더 높아진다. 귀화 조건에는 국회의원이나 지방자치단체장, 법조인, 5급 이상 공무원, 교장·교감 등의 보증인이 있어야 한다. 신상록 포천다문화지원센터장 (목사)은 “현실적으로 이런 인적 네트워크를 가진 외국인이 얼마나 되겠느냐”고 되물었다.

 창업 조력자와 중간 관리자로 역할을 할 수 있는 외국인 전문인력은 늘어나는 추세다. 전문성을 가진 외국인 인력은 지난해 5만 명을 넘어섰다. 단순 기능직 인력의 10%에 달하는 수준으로 늘어났다. 고급 인력 영주권에 대한 의무 체류 기간 등이 완화되긴 했으나 여전히 비자 절차는 번거롭고, 국적 취득은 어렵다. 국적 취득의 경우 예금 잔고가 3000만원은 있어야 하는데, 갓 대학을 졸업한 청년층 외국인이 마련하기는 쉽지 않은 돈이다. 신상록 센터장은 “3000만원을 마련하려다 사채업자에게 사기를 당하는 경우도 있다”고 말했다.

 외국에선 인재 영입을 위한 경쟁이 뜨겁다. 미국은 불법 이민 문제로 이민법을 강화하려는 움직임이 있지만, 한편에선 창업을 하는 외국인을 위한 ‘창업 영주권’ 제도 신설이 추진 중이다. 이 제도는 유학생이나 전문직 종사자가 미국에 회사를 차리고 3년간 5명을 고용하는 등의 조건을 지키면 영주권을 주는 방식이다. 지난해 미국 내 창업자의 27.1%가 이민자였고, 이런 창업이 일자리를 만들어내고 있다는 점이 반영된 것이다. 일본도 전문인력에 대해선 경력 가산점을 더 많이 주고, 영주권을 받을 수 있는 최소 체류기간을 10년에서 5년으로 단축했다. 이를 다시 3년으로 줄이는 방안이 검토되고 있다. 캐나다는 의료보장 혜택과 세제 혜택 등을 앞세워 최근 이민부 장관이 미국 실리콘밸리에 가서 대놓고 인재 유치를 하기도 했다. 칠레는 2010년부터 외국인이 창업을 해도 창업 자금을 대준다. 6개월 이상 칠레에 머물면서 창업을 하면 별다른 조건 없이 4만 달러(약 4300만원)의 자금을 주고, 사무실 공간과 임시 비자를 발급한다. 이 프로그램이 시작된 첫해에만 칠레는 200여 개의 기업을 유치했다. 이재홍 전남도립대 겸임교수는 “외국인의 한국 국적 취득을 엄격히 제한하는 것은 대원군의 쇄국 정책과 다를 것이 없다”며 “글로벌 시대에 한국은 스스로 기회를 잃고 있는 것”이라고 지적했다.

◆특별취재팀=김영훈·박진석·이상재·채윤경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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