숙이의 학사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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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훈훈한 봄기운과 함께 대학가에서는 졸업이 한창이다.
오늘 내 동생 숙이는 참으로 대견한 학사모를 썼고, 그 앞에서 조용히 가슴 조이는 나는 엄마의 뜨거운 기쁨과 눈물을 어루만져 드리면서 다시 지나간 어려운 시절을 생각지 않을 수 없었다.
돌이켜보면 어언 10년. 강산도 변한다는 긴 세월 속에 아빠의 유난한 사랑을 받고 귀엽게만 자라던 영리하고 예쁜 우리 숙이를 맑고 바르게 키우기 위하여 얼마나 애썼던가.
홀어머니의 회생과 정열로 우리 5남매가 학업에 몰두했고, 대학을 고학하다시피 했던 나도 숙이 교육의 한말노릇을 했었다.
국민학교부터 6년간 개근과 우등을 함께 했던 숙이가 실의에 차지 않게 하기 위해 무척 고심은 했지만 나의 존재란 언제나 미약하기만 했다.
-등록금을 마련하지 못해 애태우던 일.
-남들은 모두 입는 미디다, 맥시를 입혀 주지 못해 가슴 아프던 일.
-대학신문의 기자로 있는 숙이의 기사나 사진이 실릴 때의 기쁨.
-해어진 구두 사이로 까만 흑물이 스며들어 「스타킹」을 버렸을 때, 그것을 보고 혼자서만 안타까와하던 일….
기쁜 일보다는 언제나 부족함과 슬픔이 더 많은 나날이었지만 항상 웃음과 꿈을 잃지 않고 살아가도록 온 식구가 노력했었다.
그러나 기쁘기만 해야할 오늘, 두려움이 더 크게 밀려오는 건 웬일일까?
몸도, 마음도 곱게 자란 우리 숙이를 티없이 성장시켜줄 직장이 걱정이다. 그리고 여자의 행복이 걸린 현모양처가 되는 길은 또 얼마나 더 멀리 있을까. 【김 세시리아<서울 동대문구 신설동90의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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