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리 그림의 정점, 화원을 다시 보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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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윤복의 ‘혜원전신첩’ 중 ‘유곽쟁웅’(遊廓爭雄·유곽에서 사내다움을 다투다)의 일부. 장년 사내가 웃통을 벗어 젖히며 예쁘장한 젊은이에게 시비를 거는 모습이 해학적이다. [사진 간송미술관]

‘한국미술의 보고’ 간송미술관(관장 전영우)이 가을을 맞아 다시 문을 연다. 미술관 부설 한국민족미술연구소(소장 최완수)와 함께 여는 85번째 정기전 ‘진경시대화원전’이다. 13일부터 2주간 진행된다.

 진경시대(眞景時代)는 숙종(1675∼1720)에서부터 정조(1776∼1800)에 걸치는 125년간, 조선 문화가 고유색을 한껏 드러냈던 문화절정기를 이른다. 간송미술관 한국민족미술연구소의 정체성을 보여주는 용어다. 1985년 이 미술관의 ‘진경시대’ 특별기획전에서 양식사적 시대구분 명칭으로 처음 사용됐고, 최완수 소장을 위시한 ‘간송학파’들에 의해 이론화되면서 널리 알려졌다.

 진경시대는 우리 문화에 대한 자신감의 표현이다. 조선 초기 지배 이념이던 주자 성리학의 자리를 퇴계 이황, 율곡 이이가 심화·발전한 조선 성리학이 대신하면서 우리 얼굴, 우리 산천을 당당히 그린 산수화·풍속화가 꽃피웠다. 간송미술관은 그간 이 진경시대를 중심으로 연구·전시활동을 벌여왔으며, 그 정점엔 문인화가 겸재(謙齋) 정선(1676∼1759)이 있었다.

김홍도의 ‘모구양자’(母拘養子·부분). 풍속화의 사생적 필치로 두 마리 새끼 개를 묘사했다.

 간송미술관이 상대적으로 덜 조명했던 화원(畵員)을 전시 주제로 내세우기는 처음이다. 화원은 조선시대 그림을 관장했던 관아인 도화서(圖畵署)에 소속된 화가를 말한다. 요즘으로 치면 직업화가다.

 최 소장의 설명은 이렇다. “새로운 변화는 사대부에 의해 일어났다. 변화엔 새로운 이념이 있어야 때문이다. 다만 진경산수화가 나타나고 그것이 새 시대의 조류가 되면서 한 세대쯤 뒤에야 화원들도 변화를 받아들인다. 화원은 회화사에서 문화절정기에 항상 화려한 대미를 장식하는 역할을 담당한다.”

 화려한 대미, 그 모습은 어떤 것일까. 조선 후기 화원 21명의 100여 점이 출품되는 이번 전시는 숙종 대 화원인 벽은(僻隱) 진재해(1661∼1729)로 시작, 호생관(毫生館) 최북(1712∼86), 겸재의 정밀사생화풍을 본받은 화재(和齋) 변상벽(1730∼?), 진경풍속화풍의 대미를 장식한 단원(檀園) 김홍도(1745∼1806)와 고송유수관(古松流水館) 이인문(1745∼1824), 한양의 도회풍속으로 타의 추종을 불허하는 혜원(蕙園) 신윤복(1758∼?), 긍재(兢齋) 김득신(1754∼1822) 일가로 이어진다.

 ◆달라지는 간송미술관=세기가 바뀌고, 서울이 변해도, 간송미술관은 ‘연구소 부속기관’을 표방하며 옛 모습을 지켜왔다. 이 은둔의 미술관도 체질 개선을 준비 중이다. 8월 간송미술문화재단(이사장 전성우)이 출범했고, 내년 3월 개관할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그리고 SBS와 협력체제를 갖췄다.

 변화는 내년에 가시화된다. 동대문디자인플라자 개관전을 시작으로 전시가 미술관 밖으로도 나온다. 현 미술관은 정기전을 이어가면서 연구 기능을 강화한다. 간송의 큰손자인 재단 전인건 사무국장은 “43년째 이어온 봄·가을 정기전은 계속되겠지만 그 형태는 달라질 수도 있다. 5년여 전 이곳 전시가 대중화되기 이전에는 학계를 대상으로 하는 깊이 있는 전시가 많았다. 미술관·연구소는 그 같은 옛 모습으로 돌아가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미술관 뒤편 부지에 상설미술관 신축을 위해 서울시와 인허가 문제를 협의 중이며, 노후한 현 미술관의 전면적 보수 또한 준비 중”이라고 밝혔다. 전시는 27일까지. 오전 10시∼오후 6시. 무료. 02-762-0442.

권근영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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