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소비세 인상 강행 '정권 붕괴' 징크스 깰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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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아베 신조(安倍晋三) 일본 총리는 1일 현행 5%인 소비세율을 내년 4월부터 8%로 올린다고 발표했다. 아베 총리는 이날 오후 기자회견을 열어 “국가의 신뢰를 유지하고 지속 가능한 사회보장제도를 다음 세대에 물려주기 위해 소비세율 인상을 확정했다”고 밝혔다. 1997년 4월 3%에서 5%로 올리고 나서 17년 만이다.

 소비세율을 내년 4월 8%, 2015년 10월 10%로 각각 올리는 계획은 이미 지난해 국회를 통과해 법제화한 사안이다. 하지만 1차 소비세율 인상 여부는 각종 경제지표와 실물경제 상황을 종합 검토한 뒤 최종 결정하기로 단서가 달려 있었다. 또한 일각에서 “한꺼번에 3%포인트를 올리면 아베노믹스 효과로 모처럼 살아나고 있는 경기가 다시 고꾸라질 수 있다”는 신중론도 대두돼 아베 총리는 고민을 거듭해 왔다.

 아베 총리가 최종적으로 소비세율 인상을 결단한 이유는 크게 두 가지다. 먼저 주요 경제지표들을 볼 때 소비세율 인상의 충격을 흡수할 수 있다고 판단했다. 2분기 실질경제성장률은 연율 환산 기준 3.8%. 미국(2.5%), 유럽연합(EU·1.1%)에 비해 상당히 높은 수준이다. 특히 소비심리가 크게 향상됐다. 일본은행이 1일 오전 발표한 기업단기경제관측조사(短觀) 결과도 시장 전망치인 ‘+7’을 크게 웃도는 ‘+12’로 나타나 기업들의 투자심리가 살아났음을 보여줬다.

 또 하나는 ‘국제사회의 신뢰’다. 아베 총리는 이날 경제재정자문회의를 열고 “(인상 철회보다) 예정대로 인상하는 쪽이 위험이 적다”는 입장을 정리했다. 아베는 “소비세율 인상을 국제적 공약으로 내세웠고 국회에서 법안을 통과시킨 마당에 입장을 바꾸면 정부·국채에 대한 신인도가 상실되고 정책적으로 대응하기 힘들어질 것”이라고 밝혔다.

 일본의 국가채무는 지난 6월 말 기준으로 1008조 엔 수준이다. 영국·독일·프랑스의 빚을 합한 총액(830조 엔)을 훨씬 웃돈다. 국내총생산(GDP) 대비 비율도 약 250%로 세계 최대 규모다. 국제금융 시장의 최대 불안 요인 중 하나인 셈이다.

 문제는 소비세율 인상의 정치·경제적 충격을 어떻게 최소화하느냐다. 89년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내각은 소비세(3%)를 처음 도입한 지 수개월 만에 붕괴됐다. 97년 4월 이를 5%로 올린 하시모토 류타로 총리도 이듬해인 98년 참의원 선거에서 참패하고 총리직에서 물러났다. 말 그대로 소비세 인상은 ‘정권의 무덤’이었던 셈이다.

이 때문에 아베는 이날 소비세 인상을 발표하면서 경기에 미칠 악영향을 방지하기 위한 약 5조 엔 규모의 경기부양대책을 발표했다. 최대한 돈을 풀어 아베노믹스의 불씨를 살리겠다는 복안이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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