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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앙 시조 백일장] 9월 수상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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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3면

[장원] 꽃나이 윤은주

한 살 때 내 전부는 울 엄마 뽀얀 젖가슴

무럭무럭 열세 살은 개나리꽃 닮은 얼굴

하늘은 커다란 도화지 무엇이든 그렸었지.

사랑도 물이 들던 스물다섯 그 가을과

단풍비 아슴아슴 스쳐갔던 서른일곱

아들딸 어느덧 자라 내 모습을 닮아 있네.

생의 한가운데 마흔아홉 뜰을 지나

당신과 마주보며 노를 젓던 시간의 강

해마다 생일이 되면 꽃잎 한 장 얹습니다.

◆ 윤은주=195 8년 강원 삼척 출생. 서울 마포신문사 주부백일장 시 당선. 마포구청 공보과 객원기자로 활동.

[차상] 백팔번뇌 이용호

지구촌은 9회말 2아웃

2-3 풀카운트

투수 손을 떠난 108 땀의 하얀 야구공 …

관중들 숨을 죽이고

잠자리도 정지 비행.

[차하] 백일홍 지다 정승헌

자근대는 얼굴 하나 볼 붉히는 속삭임에

꿈결인가 휘휘 젓다 화들짝한 느낌표가

해거름 이운 햇살 타고 하롱하롱 떨어지나.

단조로만 채운 음계 60년을 뒤흔들고

무소식에 숨 막히어 해진 가슴 멍울져도

깊어져 늘 저려오는

이산된 헛된 꿈아.

흩날리는 꽃비 맞아 스산스레 아픈 바람

자미궁에 움츠린 채 빈 하늘만 바라보는

목 붉은 굵은 눈물이

주름 골에 묻혀 있다.

이 달의 심사평

한국 전통 시조에 깃듯 형식 미학의 핵심은 마지막 종장의 전환 구조에 있다. 초·중·종 3장만으로 시조가 된다면 3행시와 다를 바 없고 각 장의 2구4음보 구조도 생명을 불어넣지 못한다.

 초·중장에서 차원을 변화시키고, 이를 종장에서 내면화함으로써 정서적 폭발을 일으켜야 시조도 비로소 영원한 생명을 얻을 수 있다.

 하지만 형식 또한 옷가지 일뿐 진한 향기를 거느리진 못한다. 이번 달에는 박토(薄土)만 밤새 파헤친 작품들이 적지 않았다. 응모자들은 무엇보다 새로운 발견, 남다른 시상을 포착하는 감각을 기를 일이다.

 이번 달에는 윤은주의 ‘꽃나이’를 장원에 올린다. 시상 전개가 평이하긴 하지만 초·중장의 현상 배치에 종장의 내면화가 어느 정도 이뤄진 작품이란 점에서 높은 점수를 주었다. 요즘 들어 건강하게 장수하는 비결이 화두가 되고 있다. 중요한 건 언제든 자신이 꽃나이라 생각하는 마음 아닐까.

 차상은 이용호의 ‘백판번뇌’다. 관념을 구체적 이미지로 형상화한 수작이다. ‘108 땀’에 젖은 야구공이 날아가는 곳은 적멸의 세계이리라. 차하에 오른 정승헌의 ‘백일홍 지다’는 성사되지 못한 이산상봉의 아픔을 떠올리게 한다.

 만물이 익어가는 가을이다. 우리네 정서도 곱게 물들었으면 좋겠다. 그리하여 단풍처럼 고운 시를 얻을 일이다.

심사위원=오승철·권갑하(대표집필 권갑하)

◆윤은주=195 8년 강원 삼척 출생. 서울 마포신문사 주부백일장 시 당선. 마포구청 공보과 객원기자로 활동.

◆응모안내=매달 20일 무렵까지 접수된 응모작을 심사해 그 달 말 발표합니다. 장원·차상·차하 당선자에게 중앙시조백일장 연말장원전 응모 자격을 줍니다. 서울 중구 서소문로 100번지 중앙일보 편집국 문화부 중앙시조백일장 담당자 앞. (우편번호 100-8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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