스탈린 노선에 반대 실각했다가 다시 권좌에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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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3면

「고물카」는 자기 일생에 두 차례나 집권했다는 점에서「드골」과 닮았다. 그리고 이 『두 차례의 집권』이라는 공산국가 초유의 신화야말로 그의 공과가 연역될 수 있는「포인트」이기도하다.
그가 첫 번째의 축출을 맛본 것은 48년,「스탈린」의 격렬한 입김 때문이었다.「스탈린」으로 부터「사상적 과오」라고 비판받았던 그의 정책은 종교의 자유, 집단 농장화의 반대 등이었다.「고물카」는 사회주의화 과정에서는 각국 고유의 여건이 감안되어야 한다고 주장, 「스탈린·스타일」이「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을 부인한 것이다.
사회주의의 실천 이론에서뿐만 아니라 그는 대외 정책에 있어서도「독자노선」의 냄새를 핀 적이 있었다.「마셜·플랜」이 발표되었을 때「체코」와 함께 호의적인 반응을 보였던 점.
그는「티토」보다 앞서『「스탈린」으로 부터의 이탈』을 시도한 것으로 평가되었다.
「고물카」가 재집권 한 것은 축출 된지 8년 만인 56년 직접적인 계기는「포즈나뉘」노동들의 저임금·고 물가에 대한 항의「데모」였다.
그러나 그 저변에는「폴란드」인 특유의 대「게르만」·「슬라브」반 골 정신이 깔려 있었으며「고물카」의 해묵은 자주 노선이 그를 권좌로 오게 했다.
지난달 초의 독파 조약 체결 외에도 집단 농장화의 지연, 군 통수권의 명실 상부한 당 귀속 등 그의 업적 가운데 몇 가지는 아직도 명맥을 유지하고 있다. 그러나 동독·소련 사이에 끼여 있다는 지정학적인 역관계와 새 지도층의 친소적 색채로 미뤄 보면 이나마도 얼 마못 갈 것으로 예측된다. <홍사덕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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