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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짐」을 넘기고「정」을 나누며…|개각전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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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행방 불명 돼야겠다>
신임 백 총리는 21일 상오 9시 청와대에서 임명장을 받고 난 뒤 바로 중앙청으로 첫 등청, 9시 30분께 총리실에서 전 국무위원이 참석한 가운데 이 취임식을 가졌다. 신 총리는 이 취임식에서 마주쳐 서로의 포옹으로「짐」과「정」을 나누었다.
이 취임식이 끝난 후 정 전 총리는 총리 비서실 장 방에서 기자들과 만나『세월이 빠른 것을 새삼 느꼈다』면서『총리 재직 시에는 여러 가지 행동이 부자유스러웠으나 이제는 홀가분한 기분으로 며칠간 행방불명이 돼야겠다』고-.
그는『그 동안 여러분들과 공식 회견을 갖지 못해 미안하지만 여러분들이 나보다 앞질러 기사를 썼기 때문에 거기에서 오히려 내가 배운 점이 많았다』고도 했다.

<마지막 공직인 셈>
백 총리는 임명된 지 2시간 뒤인 하오 8시 외교 구락부에서 윤치영 당의장 서리와 마주 앉은 채 총리로서의 첫 기자 회견을 가졌다.
만면에 웃음을 띤 백 총리는『16년 전이긴 하지만 자유당 때 8년간 정부에서 일하는 동안 9개자리를 맡았었기 때문에 그 경험을 바탕으로 성심껏 일하겠다』고 자신 있게 취임 일성. 백 총리는『내 나이 62살이니 이번에 맡은 총리직은 아마 내 마지막 공직이 될 것이므로 더욱 짐이 무거움을 느낀다』면서『자유당 때와는 달리 각종「데이타」가 많아 일하는 여건을 살리면 우리가 다른 나라만큼 잘 살수 있다는 걸 보여 주어야겠다』고 도 했다.
어떻게 윤 당의장 서리 와 자리를 함께 하게 됐느냐는 질문에『전에는 관직의 대 선배로 67년 공화당에 입당한 후 정치인의 선배로 모셔, 좋은 얘기를 들으려고 처음 만나 뵌 것』 이라고.
그는 19일 하오 4시 청와대의 부름을 받고 2시간 후에 나와 외교 구락부에서 윤 의장 서리를 만나고 저녁은 부인들을 불러 함께 나누었다. 집으로 밀릴 축하객을 피해 첫 밤은 수유 리 모처에서 묵었다.
임명장을 받기 전날인 일요일 백 총리는 영빈관에서 국무위원들과 간담회를 갖고『앞으로 모르는 것은 알려고 묻고, 잘 모르는 것은 더 잘 알기 위해 묻고, 내가 알고 있는 것은 잘되고 있는지를 알기 위해 물을 테니 귀찮더라도 잘 협조해 달라』고 그의 통솔 태세를 뚜렷이 했다.

<2∼3명밖엔 몰라>
이번 개각의 인선은 어느 때 못지 않게 극비리에 진행되어 박 대통령의 협의를 받은 2, 3명 외에는 아무도 발표 직전까지 점칠 수 없는 정도였다.
백 두진 총리의 경우, 12월 10일께 기용이 결정적으로 기울었다는 것.
그의 총리 신임이「확정」된 것은 박 대통령이 18일 김종필 전당 의장과 가진 1시간40분 동안의 단독 회담 때였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박 대통령의 뜻이 백 총리로 기울어진 데는 6·25 사변 중 총리로 난국을 치른 관록, 3선 개헌 때의 명백한 태도, 국회의 대 미 사절 및 지난가을 대통령 특사로 남 미 시찰에서 거둔 성과 등이 평가된 듯.
백 총리는 임명 통고가 있기 전인 이날 상오10시 반부터 국회 외무위에서 차지철 위원장과 1시간 너머 얘기를 나누고 하오 4시 박 대통령의 부름을 받고 바로 청와대로 들어갔다. 그래서 백 총리가 소속하고 있는 외무위의 몇몇 의원은 뒤늦게 눈치를 챘었다.
개각 설이 나돌 때부터 백 총리의 이름은 장경순, 백남억, 김일환 씨 등 몇 사람의 이름과 함께 꾸준히 오르내리고 있었으나 정일권 총리의 유임 설까지 있어 총리 후임 인사는 끝까지 장막에 가려져 있던 셈이다.

<"공천 힘들군 연막">
법무·농림 장관과 원호 처장의 경질은 박 대통령이 l9일 하오 4시 백 총리·윤 당의장 서리 등 세 사람과 협의, 최종 결정했다는 것이다.
국회 사무총장이었던 배영호 법무장관은 국회의 모 간부가, 주 월 대사였던 신상철 체신 장관은 그의 군대 선배로 친분이 있는 모 장관이 각각 천거했다는 얘기다. 김 농림 장관은 평소 박 대통령으로부터 행정 능력을 인정받아 농림 장관으로의 전보가 오래 전에 내정 됐다는 것.
이번 장관 경질은 당초 범위가 클 것으로 예상되어 L장관은 보다「상위」로 전보될 것이라는 귀뜸을 누군가로부터 받기까지 했다.
정보 부장의 경질은 아무도 예측하지 못한 일. 이후락 씨가 몇 차례 귀국할 때마다『울산 출마를 희망했으나 관철되지 않았다』는 얘기들이었다. 지난 9일 귀국하여 12일 일본으로 돌아갈 때는 이미 정보 부장을 맡게 된다는 것을 알고 있었으나 그는『공천이 그렇게 힘든지 모르겠다』고 침울한 표정까지 지어 철저히 연막을 폈다.

<1·21 사태가 최난>
우리 정부 사상 최 장수의 총리로 만 6년 7개월 10일간 재임하고 물러난 정일권 씨는 이날 저녁 삼청동 공관에서 조용히 사무 인계 준비 등 잔무 정리를 하면서 보냈다. 퇴임 소감에 대해 정씨는『재임 기간 중 한-일 협정·국군 파월 등 주요 국가적 사업을 끝낸대 보람을 느끼지만 박 대통령을 보좌하는데 미흡한 점이 많았다』면서『가장 어려웠던 일은 1·21사태였다』고 회고-.
정씨는 지난 5월 취임 6주년 기념일에도『이제 6학년이 되었으니 졸업할 때가 되었다』 고 말했는데 이날도『막상 졸업을 하고 보니 우등생인지 아닌지는 훗날 국민이 심판할 것』 이라면서 미소를 지었다.
삼청동 공관에서 이사해야 할 정씨는 약 한달 전부터 사택을 마련하려고 집을 보러 다녔는데 우선 장충동의 사저로 옮길 것이라고. <윤기병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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