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가본 셰익스피어, 극(2)|런던·셰익스피어·그룹의 내한에 붙여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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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4면

우리는 확실히 셰익스피어를 멀리하고 있다. 가까이 하고 싶어도 학자들의 영역을 침범하는 것 같아 먼발치에서 경의를 표하는 것으로 자위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잠시 이성으로 돌아가 생각해 본다면 어딘가 잘못되어 있음을 알수 있다. 셰익스피어를 위대한 시인이라고 떠받드는 것은 좋지만 그것이 몇몇 학자들의 연구대상의 인물로서 인용되는 것으로 그친다면 그것처럼 우스운 일은 없다. 이미 셰익스피어는 우리의 가장 가까운 벗이기 때문이다. 셰익스피어가 위대한 것은 콜리지가 찬사를 보냈기 때문이 아니라 각계각층의 남녀노소가 극장에 모여 앉아 그의 연극이 재미있다고 박수를 쳤기 때문이다.
신나게 칼싸움을 하고, 어릿광대가 실없는 잡담을 하고, 여자가 남자로 변장을 하는가 하면 유령이 나오고 마녀가 예언을 하고, 노래하는 장면이 많고…희극이나 비극을 막론하고 심심치 않게 눈요기를 시켜 준다. 이른바 신파적 요소가 많다.
하지만 이러한 신파적 요소가 많은 것만으로는 셰익스피어가 위대할 수 없다는 것을 우리는 안다. 어떠한 사실에서 혹은 이미 있던 이야기에서 셰익스피어 나름의 인물을 창조하고 무궁무진한 표현의 마술이 관객을 사로잡지 않는다면 그를 위대한 시인이라고 추앙하지는 않을 것이다. 진정 셰익스피어는 연구할 것이 아니라 읊어 읽을 것인지도 모른다.
지난 여름 필자는 영국정부의 호의로 스트래트포드의 에이번 강변에 자리잡은 왕립 셰익스피어 극장에서 3개의 셰익스피어 극을 본 일이 있었다. 『리처드 3세』나 『되는대로』 (보기전날 작품을 다시 읽었다)『베로나의 두 신사』(이 연극은 현대 복의 연극이었음), 이상 세 연극이 첫째 것은 사극이어서, 둘째 것은 내용이 재미있어서 그리고 셋째 것은 현대 복을 입은 데다 개까지 등장하기 때문에 관객이 마음의 부담 없이 즐겨보는 것이었다. 그들의 연기나 대사가 훌륭했음은 말할 것도 없다.
런던에서 기차를 타고 스트래트포드까지 가는 동안 찻간에서 상연될 작품을 읽고 있는 여성도 있었다. 연극이 진행되는 도중에도 잘한다고 박수를 치는 때도 있었고 쌍쌍이 모여든 만원의 극장 안은 학자들보다 순간 순간마다 아름다운 인생을 체험하는 것이 분명했다. 우리에게는 불가피한 언어의 장벽이 있기는 하지만 이번 내한하는 런던·셰익스피어·그룹의 공연이 본격적인 영국발음의 대사와 숨은 연기로써 우리관객을 즐겁게 해주리라고 기대를 걸어 본다. 특히 영문학도들에게는 셰익스피어 극을 이해하는데 다시없는 좋은 기회가 아닐까 생각한다. 【오화변<연세대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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