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농촌 복지' 일자리 400개 일군 신부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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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2면

노기보 신부(오른쪽)가 이상희 녹색삶지식경제연구원 이사장과 김제지역자활센터 내봉제 공장에서 농촌지역 일자리 창출 방안 등을 논의하고 있다. [프리랜서 김성태]

본업은 신부. 그러나 그는 종교활동보다 ‘일자리 만들어주는 신부’로 더 소문났다. 고향 농촌에 부임해 10여 년간 그가 만들거나 찾아준 일자리가 400여 개에 이른다. 그것도 대부분 생활이 어려운 계층을 위한 일자리다.

 대한성공회 노기보(51) 신부. 그는 1997년 고향 전북 김제에 부임했다. 선교 시설 ‘나눔의 집’을 지어 운영하는 게 그의 임무였다. “지역민들의 복지에도 힘써야 한다”는 조건도 붙었다. 원래 대학에서 원예학을 전공한 노 신부는 주민들에게 유기농법과 시설원예 등을 가르쳤다. “소득을 높이는 것 또한 복지”라는 생각에서였다. 아예 농민대학과 농업개발원을 만들어 기술을 보급했다.

 2~3년이 지났다. 농업 기술 보급은 터를 잡았다. 그때 노 신부의 눈에 또 다른 현실이 들어왔다고 했다.

 “기초생활수급자가 왜 그리 많은지. 김제가 이름난 곡창인데도 그랬습니다. 워낙 영세하게 농사를 짓다보니 가난을 못 벗어나는 거죠.”

 이들에게 꼭 필요한 복지 혜택이 뭘까. 일자리를 만들어주는 거였다. 궁리 끝에 ‘자활근로제도’를 활용하기로 했다. 최저생계비만큼도 못 버는 가구의 가족이 일을 하면, 정부가 월 80만~90만원 정도 인건비를 대주는 제도다. 다시 말해 이들을 고용하는 사업체는 상당폭 인건비를 절감하는 셈이 된다.

 일자리 만들기·찾아주기의 첫걸음은 노인 돌보미였다. 농촌이라 고령자가 많아 노인 돌보기 일손이 많이 필요하다는 점에 착안했다. 자활근로 대상 가구의 주부 등을 모아 요양보호사 자격증을 얻게 한 뒤 인근 노인복지타운 등에 취직시켰다. 노 신부가 키워내 현재 곳곳 노인 복지타운 등지에서 일하는 인력이 230여 명에 이른다.

 아예 ‘김제지역자활센터’를 세워 센터 내 협동농장·종묘장·세차장·봉제공장·자동차부품공장에서 일하도록 했다. 신부가 만든 일자리다. 현재 센터에선 170여 명이 근무하고 있다. 근로자들은 일단 정부가 주는 돈을 임금으로 받고 이에 더해 ‘자활적립금’도 지급 받는다. 자활센터가 사업을 해 이익을 내면, 그 돈을 쌓았다가 나눠주는 것이다. 대개 2년 정도 일하면 1인당 적립금 300만원 가량이 쌓인다고 한다. 자활센터의 종묘 사업도 첫 해외 수출을 눈앞에 두고 있다. 여기서 생산한 가을 배추 씨앗 2t이 다음 달 중국으로 수출된다.

 자활센터는 창업의 길도 터준다. 근로자가 희망하면 창업 교육을 해서 내보낸다. 2010년 김제에서 창업한 주택 인테리어 업체 ‘상우인테리어’가 그런 경우다. 회사 송수웅(38) 대표와 직원 8명이 모두 자활센터에서 일하다 나와 사업을 차렸다. 이젠 한 해 5억원 매출을 올리는 업체로 성장했다.

 노 신부의 활동에 주목한 이상희(75·전 과학기술처 장관) 녹색삶지식경제연구원 이사장은 “김제의 사례는 지역 공동체 스스로 일자리를 만들어낸 대표적인 경우”라며 “이런 창조적 아이디어를 실현한 지역 공동체에 ‘창조 마을’이란 브랜드를 붙여 전국으로 보급하는 것을 추진하고 있다”고 말했다.

김제=최경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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