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수대] 둔지산(屯芝山)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31면

오병상 기자 중앙일보 칼럼니스트

북한산이 한강을 바라보며 남산을 안고 있다면, 남산은 둔지산(屯芝山)을 품고 한강을 내려다보고 있다. 지형상 둔지산은 한강변 모래사장으로 달려가는 막내 동산이다. 그러나 그 산은 1백년간 금단(禁斷)의 땅이었다. 외국군이 주둔해왔기 때문이다.

둔지산은 용산 미군기지의 남쪽 캠프에 자리잡은 야산(해발 65.5m)이다. 조선시대엔 인근에 이태원(梨泰院).서빙고(西氷庫).와서(瓦署) 등 공공기관이 많았다.

남쪽으로 향하는 길목의 이태원은 관리용 숙박시설이며, 반포대교 북단 한강 기슭에 있던 서빙고는 수라상에 올릴 얼음 보관창고며, 용산공고 자리에 있던 와서는 관용 기와를 구워내던 곳. 기관들이 많았기에 둔지산 주변엔 시설관리비를 충당하기 위한 농지인 둔전(屯田)이 많았다. 그래서 둔지산이다.

1904년 일본군이 둔지산을 빼앗아간 근거는 한일의정서(韓日議定書) 제4조다. '외침이나 내란으로 대한제국 황실의 안녕과 영토의 보전에 위험이 있을 경우 대일본제국 정부는 곧 필요한 조치를 취할 것이며, 대한제국 정부는 이에 따른 충분한 편의를 제공할 것'이라는 조항이다. 러일전쟁의 와중에 만들어진 의정서에 근거해 일본군은 남산 남쪽 땅 3백만평을 요구했다.

당시 이 지역엔 1천여가구가 살고 있었고, 1백만기 이상의 묘지가 있어 이장을 반대하는 주민들의 반발이 적지 않았다. 의정서에 서명한 이지용(李址鎔)이 사직서를 내고 피신해야 할 정도였지만 일제는 예정대로 3백만평을 수용했고, 그 가운데 1백15만평을 군사용으로 개발했다.

둔지산을 미군이 이어받은 근거는 1953년 체결된 한.미 상호방위조약 제4조다. '미국의 육.해.공군을 대한민국의 영토와 그 주변에 배치하는 권리를 대한민국은 허용하고, 미국은 이를 수락한다'는 규정이다.

상호방위조약은 6.25전쟁의 휴전과 함께 이승만 대통령이 미국 측에 강하게 요구해 얻어낸 안보외교의 성과물이다. 그래서 노(老)대통령은 조약체결 소식을 듣고 "이런 동맹이 옛날에 체결됐다면 우리도 고생하지 않았을 것을…"이라며 만시지탄(晩時之歎)의 소회를 감추지 못했다고 한다.

그로부터 50년, 세상이 변하고 미군을 보는 눈길도 곱지 않아졌다. 비로소 국방부가 용산기지 이전계획을 연내에 확정짓겠다고 24일 공식발표했다. 서울시는 공원을 만들겠다고 화답했다. 정말 만시지탄이다.

오병상 국제부 차장