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 원전 5000㎞ 떨어진 곳서 왔는데 … 러시아산 동태의 눈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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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0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수산물 매장. 소비자들이 일본 방사능 오염수 파문으로 인한 불안감 때문에 일본 후쿠시마 원전과 5000㎞ 이상 떨어진 곳에서 잡은 러시아산 명태까지 구입을 꺼리고 있다. [안성식 기자]

10일 서울의 한 대형마트 수산물 매장. 러시아 해역에서 잡아 온 동태(냉동 명태)를 시중가의 절반 이하인 마리당 1100원에 판매하고 있다. 하지만 소비자들은 눈길 한 번 주지 않은 채 매장을 지나친다. 주부 김성미(45)씨는 “국내에서 소비하는 명태의 90%가 일본산이라는 소문까지 돌아 사기 전에 겁부터 난다”며 “올해는 추석에 동태전을 부치지 않을 생각”이라고 말했다.

 동태 전문 식당들도 요즘 손님이 크게 줄어 울상이다. 서울 북창동에서 동태요리 식당을 운영하는 박형숙(55)씨는 “점심 손님이 지난달에 비해 4분의 1 수준”이라며 “손님들은 동태도 일본에서 온다고 생각하기 때문에 올해 장사는 사실상 포기했다”고 말했다.

 동태가 일본 방사능 오염수 파문의 유탄을 맞았다. 일본 홋카이도에서 잡은 냉장 명태(생태)가 유통되다 보니 국내 명태 소비량의 97% 이상을 차지하는 러시아산 동태까지 소비자로부터 외면받게 된 것이다. 한류성 어종인 명태는 현재 국내에서는 잡히지 않는다. 국내에 유통되는 명태(약 26만t) 가운데 일본 홋카이도산 명태(3443t)는 2% 이내다.

 대형마트에서도 명태 판매량은 절반 이하 수준으로 떨어졌다. 대형마트 3사(이마트·롯데마트·홈플러스)의 지난달 수산물 매출을 분석한 결과, 명태 판매량은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45~66% 줄어들었다. 이미 대형마트들은 2011년 3월 일본 후쿠시마 원전사고 직후 일본산 수산물 수입을 중단했다. 명태도 일본산 생태 대신 러시아산 동태를 판매하고 있지만,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중심으로 확산되는 부정확한 정보 탓에 소비자들의 불안감은 오히려 더 커지고 있다.

 롯데마트는 “2011년 동태와 생태의 매출 구성비는 83.3% 대 16.7%였으나 올해는 97.2% 대 2.8%로 생태 비중을 크게 줄였다”면서도 “올 하반기 들어서면서 소비자들의 구매심리가 상당히 꺾인 상태”라고 설명했다. 더군다나 올해는 가격까지 오르면서 명태 수요가 더욱 줄었다. 명태 산지인 러시아에서 국내 원양어선 업체들에 대한 어획량 단속을 강화하겠다고 나서면서 명태 가격이 지난해 같은 기간에 비해 24% 정도 오른 2462원(한 마리당·한국농수산식품유통공사 기준)이 됐다. 대형마트 수산담당 직원인 최현석(33)씨도 “지난해 같은 기간에는 하루 평균 10마리 정도는 팔았지만, 올해는 하루 5마리를 팔면 많이 팔았다고 할 수 있다”며 “구입하려는 소비자들이 없기 때문에 일부 마트에서는 동태를 아예 수산물 매장에서 취급하지 않을 정도”라고 말했다.

 급기야 원양업계는 명태 판매 저조로 인해 경영난까지 겪고 있다. 업계 1위인 사조오양은 올해 1~7월까지는 월평균 판매량이 1230t이었지만, 지난달 명태 판매량은 전월 대비 11% 수준인 14t에 그쳤다. 한성실업은 올해 8월까지 동태 판매량(7825t)이 지난해 같은 기간(1만3618t)의 절반 수준에 그쳤다. 특히 북서 베링해 조업분 2398t이 이달 초에 입하됐지만, 일본 방사능 오염수 문제로 입찰이 유찰되면서 창고에 쌓인 채 방치되고 있다. 이창열 ㈜동남(원양수산업체) 이사는 “자꾸 확산되는 SNS 괴담 때문에 날이 갈수록 매출이 하락하는 상황”이라며 “현재 국내에 들어오는 동태는 사고가 난 일본 원전과는 5000㎞ 이상 떨어진, 방사능과 전혀 무관한 곳에서 잡아 왔다”고 강조했다.

 원양업계는 “오염 우려가 있는 일본산 생태와는 달리 러시아산 동태는 방사능으로부터 안전하다”며 소비심리 회복에 주력할 방침이다. 국립수산과학원도 이날 “일본 원전사고 직후인 2011년 3월 15일부터 원양산 동태에 대한 방사능 오염도 검사를 실시하고 있지만 지금까지 방사능이 검출된 사실이 없다”고 밝혔다.

글=김영민 기자

사진=안성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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