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전 방파제 뚫려 있는데 완전 차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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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일 밤 일본 도쿄전력 기자회견장.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는 후쿠시마 원전 0.3㎢ 항만 내에서 (방사능 오염수가) 완전 블록(차단)돼 있다고 했는데 그 근거가 뭐냐.”(기자)

 “항만 내와 항만 밖 바다에서의 방사능 수치 모두 기준치보다 낮다는 뜻의 발언 아니겠느냐.”(도쿄전력 관계자)

 “그렇다면 ‘오염수 영향이 항만 내에서 완전 차단돼 있고, 현 상황을 컨트롤(통제)하고 있다’는 아베 총리 말에 동의하는 건가.”(기자)

 “항만 안과 밖의 물은 계속 섞이고 있다. 그건 사실이다. 우리로선 하루라도 빨리 오염수 상황을 안정시키려 한다.”(도쿄전력 관계자)

 10일 오전 주일 한국 특파원단을 대상으로 한 도쿄전력의 설명회장.

 “항만 내에서 물과 같은 성질의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가 항만 바깥 바다로 흘러나가고 있는 걸 시인하나.”(기자)

 “우리는 예전이나 지금이나 삼중수소가 밖으로 흘러나가고 있다고 공표했다. 공식입장이다.”(도쿄전력 덴다 야스타카 ‘리스크 커뮤니케이터’)

태평양과 접해 있는 일본 후쿠시마 원전 전경. 왼쪽 아래 방파제가 뚫린 부분을 통해 매일 항만 내 해역(0.3㎢)의 바닷물 절반이 태평양과 뒤섞이고 있다. [후쿠시마 AP=뉴시스]▷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아베 총리가 국제올림픽위원회(IOC) 총회장에서 공언한 발언들에 대해 후쿠시마(福島) 제1원전 운영사인 도쿄전력이 이의를 제기하고 나섰다. 올림픽 열기에 휩싸여 있는 사회 분위기상 대놓고 “아베 총리의 발언은 거짓말”이라고는 하지 못한다. 하지만 “완전히 차단되고 있는 건 아니다”라는 표현으로 이견을 공개적으로 드러내고 있다.

 마이니치(每日)신문은 10일 “도쿄전력이 일본 정부에 아베 총리의 (발언) 진의가 뭔지 문의했다”고 전했다. 무엇을 근거로 ‘완전 차단’ ‘통제 하’란 발언을 했는지 거꾸로 도쿄전력이 아베에게 다그쳤다는 설명이다. 아사히(朝日)신문 등 일본 언론들도 10일 아베의 “오염수 영향은 후쿠시마 원전 항만 내부의 0.3㎢ 범위 안에서 완전히 차단되고 있다”는 발언을 집중적으로 따지고 나섰다.

 후쿠시마 제1원전 원자로 1~4호기의 바다 쪽에는 방파제에 둘러싸인 원전 전용 항만이 있다. 원전사고 직후인 2011년 4월과 5월 도쿄전력은 500t이 넘는 초고농도 오염수를 주변국에 알리지 않고 인위적으로 방류했다. 이후 도쿄전력은 1~4호기의 취수구와 항만 내 바닷속에 실트(silt) 펜스라고 불리는 수중 커튼을 설치했다. 실트 펜스는 기름과 화학물질 등이 바다와 강 등에서 확산되는 것을 막는 장치. 하지만 걸러지는 방사능은 대략 80% 정도에 불과하다. 도쿄전력에 따르면 “펜스 안과 항만 내, 그리고 항만 밖 바닷물은 서로 하루에 50%씩 뒤섞이고 있다”고 한다. 방사성 물질인 삼중수소의 경우 물과 비슷한 성질을 지니기 때문에 펜스를 그냥 통과해 바다로 흘러가는 형편이다. 다시 말해 현 상황은 오염수가 바다로 흘러나가는 걸 차단할 수 없는 구조다.

 긴키(近畿)대학의 야마자키 히데오(山崎秀夫) 교수(환경해석학)는 “완전히 차단됐다고 하는 (아베의) 단정은 과학적으로 틀린 것”이라며 “항만 밖에서 방사능 농도가 높은 어패류가 실제로 발견되고 있는 만큼 오염수의 진정한 ‘컨트롤’까지 최소 2~3년 더 걸릴 것”이라고 말했다. 항만 밖 방사능 수치가 낮게 나오는 것도 대량의 바닷물로 희석돼 그렇게 나올 뿐이라는 설명이다.

 아베 총리는 “항만 밖 방사능 수치가 거의 없을 정도로 미미하고 항만 내 수치도 기준치를 밑돈다”는 차원에서 ‘0.3㎢(항만 내) 완전 차단’이란 표현을 쓴 것으로 보인다. ‘오염수’가 아닌 ‘오염수의 영향’이란 교묘한 표현을 쓴 이유가 따로 있다는 말도 나온다.

 미즈시마 히로아키(水島宏明) 호세이(法政)대 교수는 “IOC는 아베의 거짓말에 속았다”며 “그렇다면 앞으로 그 거짓말이 ‘사실’이 되도록 국제사회의 감시를 받는 수밖에 없다”고 꼬집었다.

도쿄=김현기 특파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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