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년만의 영수대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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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정치엔 건강이 제일이지요>
유 당수는 10시 정각 고흥문 사무총장, 신동준 비서실장과 함께 청와대정문에 도착, 김정렴 비서실장과 김 공화당 총무의 안내로 대기실에 들어섰다.
잠시후 박 대통령은 대기실로 나와 악수를 나누고 모두 함께 대통령 집무실로 들어가 인사말을 주고받았다.
▲박대통령=유 당수께서 당수가 되신 후 처음 만나 뵙습니다.
▲유 당수=당수가 된 후 처음 만나 뵙게되니 반갑습니다. 그 동안 건강은 어떠십니까. 뵙기에 건강해 보입니다.
▲박대통령=감사합니다. 월남에 다녀오셨다는 데 여행에 수고 많으셨지요. 역시 정치를 하는데는 건강이 제일 중요하지요.
인사말이 끝난 뒤 여-야당 총무들은 별실로 나와 기다리고 단독회담에 들어갔다.

<자주 만났으면 좋겠습니다>
두 사람의 얘기는 길어졌다. 당초엔 오전 중에 회담이 모두 끝날 줄로 짐작되었으나 두 사람의 회담은 1시까지 3시간 끌었고, 김 공화당총무와 고 신민당사무총장이 배석한 회담이 20분간 이어졌다. 간단한 다과를 나누고-.
▲유 당수=장시간 할애해주어 감사합니다.
▲박대통령=앞으로 자주 만나 얘기를 나누는 게 좋겠습니다. 식사라도 함께 같이 나누는 게 좋았을 것을….
▲유 당수=호의는 감사합니다. 저는 예정된 시간이 있어서…오늘은 사양하겠습니다.
이렇게 해서 유 당수는 현관까지 박대통령의 마중을 받고 청와대를 물러 나왔다. 회담결과에 대해서는 김 총무·고 총장이 지켜보는 가운데 강상욱 대변인이 발표했으나 의제설명이 있었을 뿐, 단독회담에서 오고간 얘기내용은 밝혀지지 않아, 어려웠던 야당당수의 청와대나들이가 자칫하면 구구한 억측을 낳을지도 모르게 됐다.

<계기는 방 월 인사 전할 때>
박-유 회담의 첫 얘기는 유 당수의 방 월 인사편지를 박대통령에게 전하던 자리에서 정해영 신민당총무가 처음으로 꺼낸 것. 인사 편지에는 그런 얘기가 없었지만 정 총무가 이 편지를 전하면서『귀국 후에는 면담이 이루어지기 바란다』고 했다는 것.
정 총무는 25일 일본으로 가기 앞서 22일 김진만 공화당총무를 만나『박-유 회담을 우리가 추진해 보는 것이 어떻겠느냐』는 얘기를 먼저 꺼냈다.
이틀 후(24일)에는 김진만 총무가 유 당수 댁을 찾아가 유 당수의 의향을 직접 타진했고 박대통령은 그 시간을 29일 상오 10시로 잡아 28일 낮 유 당수 쪽에 구두로 초청했다. 청와대에 드나들며 회담날짜를 조정하던 김진만 총무가 고흥문 신민당사무총장을 A그릴에서 만나 이 초청을 전한 것이다.

<최고회의 때 이후 8년만에>
박대통령과 유 당수가 만나기는 최고회의 때이래 처음이다. 62년 가을 정치활동재개에 앞서 재야지도자들과 일련의 접촉을 가졌었는데 그 일환으로 두 사람이 만난 적이 있다. 그 뒤 두 사람이 만난 적이 없으니까 이번 면담은 실로 8년 만인 것이다.
또 야당 당수가 대통령을 만나기는 65년 7월 박순천 민중당 대표위원의 경우이후 5년 만이다.
한-일 비준과 월남파병동의를 둘러싸고 정국이 굳어있을 때 갑자기 마련되었었다. 이 박-박 회담에선 강행과 투쟁의 충돌을 막기 위해『의정질서를 유지한다』는 막연한 한계를 긋는 것과 비준국회소집을 늦추는 데에 합의했다.
말하자면 이 회담은 경색의 타개를 위한 것이었다.
그러나 이번 박-유 회담은 성격이 다르다. 경색타개(정치적 차원)를 위해서라기보다 안보문제(국가 정책적 차원)가 주의 제이기 때문이다.
박-유 회담은 민중당내의 강·온파 대립에서 온건파가 뚜렷한 노선을 밝히는 계기가 되었고, 강경파가 따로 당을(신한 당) 만드는 한 구실이 됐었지만 이번엔 그런 부작용은 없을 것이다.
단지 정당내부에 미치는 영향이라면 유 당수의 프레스티지가 높아지는 것을 들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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