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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석기, 재력·전략으로 勢 확장 … 비공식 ‘정점’ 부상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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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1일 서울 내곡동 국가정보원 앞에서 열린 통합진보당의 국정원 규탄 집회에 북한 김정일?김정은 부자 비난 문구를 쓴 티셔츠를 입은 청년이 뛰어들었다. 이정희 통진당 대표(앞줄 왼쪽 넷째)와 그 오른쪽에 있는 이석기 의원이 이를 지켜보고 있다. [뉴스1]

통합진보당(통진당) 이석기 의원은 늘 웃는 표정이다. 그렇게 역풍을 버틴다. 뒤에 단단한 세력이 있어 보인다. 그런데 그 세력이 통진당의 ‘당 중 당’이며, 경기동부연합 가운데에서도 ‘이석기 결사 옹위 세력’이란 증언들이 나오고 있다. 이석기 의원과 경기동부를 꾸준히 지켜본 4명의 운동권 인사를 통해 상황을 짚어봤다.

2003년 6월 24일, 경기도 성남시 경원대의 진리관 계단 강의실. 저녁 10시반쯤 이석기씨가 나타났다. 300여 명의 박수와 환호. 그는 민족민주혁명당(민혁당) 사건으로 도피하다 2002년 체포돼 2003년 3월 2년6개월의 징역이 확정됐다. 그러다 노모의 병환으로 1주일 귀휴를 나와 환영 행사에 참여한 것이다. 그곳엔 민혁당 창당의 한 축이었던 하영옥, 이용대 민주노동당 경기도 지부 지부장, 김홍렬 민주주의민족통일전국연합 민생위원장, 도영호 경기노동운동연합의장 등 ‘거물급 주사파(NL) 인사’들이 나왔다. 환영은 뜨거웠다.

당시 그는 경기도 NL에서 이미 영웅이었다. 검찰 심문 때 묵비권을 행사했다는 소문은 그들의 마음을 흔들었다. 민혁당을 창당한 김영환씨는 “이석기는 민혁당 수도권 위원장이었으며 서열로 따지면 당내 5위쯤 됐다”고 했다. 그런 고위급 인사의 ‘결연한 저항’은 NL에 의미가 컸다(민중의 소리 사이트와 국민참여당 부산 금정구 이청호 구의원이 쓴 『진보는 죽었다』(신우·작은 사진), 옛 민노당 간부 출신 A씨의 말을 토대로 재구성).

그래서 NL파 학생들은 그가 감옥에 있을 때 ‘이석기 8·15특사를 위한 청와대 도보 순례단’을 꾸려 청와대 주변을 수개월간 행진했다. 당시 옛 민노당 중간 간부급이었던 A씨는 “학생들은 서명운동까지 했지만 본부에선 이석기에 주목하지 않았다”고 했다. 이석기는 귀휴 두 달 뒤, 형 확정 5개월 만인 2003년 8월 광복절 특사로 가석방됐고 2005년 특별복권됐다.

민혁당 사건 심문 때 묵비권 … NL 영웅으로
이석기 의원의 빠른 복권에 대해 이청호 구의원은 “노모의 와병과 누나 이경선의 사연이 청와대에 영향을 줬을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에 따르면 군무원인 이경선은 도피한 동생을 지원했다는 이유로 기무사의 수사를 받고 정직됐다. 후에 ‘정직은 부당하다’는 판결을 받았지만 이후 다발성 경화증을 앓다 2005년 사망했다. 노모는 2008년 사망했다.

출옥한 그는 겉으론 사업에 집중하며 운동권과 거리를 둔 듯했다. 인터넷 언론 ‘민중의 소리’ 이사가 됐고 이어 선거전략전문기관인 CNP(현재 CNC)와 여론조사기관인 사회동향연구소에 몸을 담았다가 곧 세 회사의 대표가 됐다. 이 의원과 A씨, 현재 노동당의 주요 당직자인 C씨의 말을 종합하면 CNP 아래엔 ‘문화기획 상상’, ‘길벗투어’, ‘미디어 보프’, ‘따미 피쳐스’ 등 자회사가 있었는데 이를 통해 민노당 본부와 경기도당의 행사를 거의 독점하다시피 했다.

특히 ‘문화기획 상상’은 대학생 수련회나 단체 행사, 백두산·금강산 관광 등을 집중 취급했다. A씨는 “진보 진영을 대상으로 한 사업은 대박이 났다”고 말했고, 이 의원은 “재력이 늘어 이석기는 8개 회사를 거느린 GMC그룹의 회장이 됐다”고 말했다.

그 과정엔 포석이 깔렸다. 이청호 구의원은 “이석기는 한국대학생연합(한대련) 대학생들을 포섭했고, 한대련 소속 대학의 총학생회 선거에 경기동부와 NL의 후보를 밀어 당선시켰다. 그렇게 총학생회 행사를 독점했고, 총학생회 간부와 학생들은 경기동부의 활동 주축이 됐다”고 말했다.

경기동부도 이석기의 활동과 병행해 확장됐다. 노동당 당직자 C씨는 “경기도당 내 ○○청년회, △△연합, ◇◇여성 단체라는 이름의 조직은 경기동부의 핵심 조직이며 이석기의 활동무대였다”고 말했다. A씨는 “청년회 가운데는 터사랑청년회가 중심이었고 여기에 성남청년회, 용인청년회가 가세했다”고 말했다.

광주·전남으로도 세가 확장됐다. 민노당의 연대 세력으로 울산·인천 연합이 있었지만 울산은 노동운동, 인천은 시민운동이 강했다. A씨는 “경기동부는 2005~2008년 서울대 출신 NL을 호남 지역의 대학원에 진학시키고 동아리 조직을 만들게 했다”고 말했다. 이석기 의원이 사업을 주도했다는 증거는 없지만 3인은 모두 “그가 돈으로 이런 작업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고 추정했다.

이런 역할에 대해 평가는 양극을 달린다. 그의 오른팔 격으로 간주되는 금영재씨는 2012년 5월 1일 “이석기는 10년간 내부(물밑)에서 지원했다. 그 신념을 바꾸지 않고 이 일을 해 존경을 받았다”고 말했다(이 구의원 책 182쪽). 그러나 민혁당 활동을 같이 했고 지금은 야당 당원인 D씨는 그의 이름을 대자 다짜고짜 “××”라고 욕을 했다. ‘지독하며, 상대하고 싶지 않은 사람’이라고 악평했다. 그러나 다들 사업 능력에 대해선 “무에서 유를 창조하는 사람” “수완이 좋고 정치자금도 잘 동원했다”고 평한다.

이번에 압수수색 대상으로 공개된 10여 명과의 관계도 그 10년간 만들어진 것으로 추정된다. 우선 이정희 통합진보당 대표의 남편 심재환은 누나의 부당 판결을 얻어낼 때 변호사였다고 이청호 구의원은 말한다.

A씨는 “홍순석·김근래씨는 성남·용인·수원 같은 경기동부 본거지에서 활동하던 사람”이라고 했다. 민중가수 출신인 우위영 전 대변인과 이석기 의원과의 관계에 대해 이청호 구의원과 A씨는 “최고위원까지 했던 우위영씨가 이 의원의 보좌관이 된 것은 특이한 일”이라고 말했다. C씨는 “나머지는 민노당이 2008년 분리된 이후 등장한 ‘이석기의 사람들’ 같다”고 말했다.

핵심 조직 100여 명 혁명 역량엔 의구심
통합진보당(통진당)은 2008년 경기동부, 광주·전남 연합, 울산·인천 연합의 연합으로 출범했다. 복수의 관측통에 따르면 경기동부와 경기동부가 지배하는 광주·전남이 당권의 70%를 장악했다. 핵심 주주는 이석기 의원이었다. 이청호 구의원은 “당시 당권파들은 당 대표도 원내대표도 아닌 이석기를 대표님이라고 불렀다”고 말했다.

철저히 준비한 그는 2012년 통진당 비례대표로 전격 등장해 세상을 놀라게 했다. 하부구조는 그 뒤 비례대표 부정경선 파동을 비롯해 고비마다 그의 뜻을 따랐다. A씨는 “특히 이번에 모인 100여 명은 그중 핵심 세력 같다”며 “이들은 당에서 50명, 노동 분야 30명, 농민 분야 20명, 시민 분야 30명의 방식으로 모일 것”이라고 말했다. 또 “2007년 민주노동당과 국민참여당이 통합하려 할 때 이석기가 작은 모임에서 지도지침을 채택한 뒤 100~130명 규모의 모임에서 그 지침을 최종 결정했다는 말이 있는데 이 모임의 구성원이 지난 5월에 모인 사람일 수 있다”고 말했다. 노동당 당직자 C씨는 “통진당은 당 체계를 따르지만 경기동부는 비공식 체계이며 그 정점이 이석기로 보인다”고 했다.

그런데 이들은 100여 명이 무장봉기 세력이라는 추정을 미심쩍어한다. A·C씨는 “이번 사태가 조작됐다고 보진 않는다”면서도 “무장봉기는 요즘 운동권의 상식이 아니다. 10년 정권 교체 경험 뒤 이를 거의 포기했으며 공안당국도 이를 안다”고 말했다.

나아가 ‘이들 100여 명은 혁명을 논하기엔 미미한 인물’이라고 한다. A씨는 “경기동부 사람은 혁명전사를 자처하지만 실제론 힘들게 사는 저소득층”이라며 “나이 40이 되도록 운동만 해 형편이 안 좋고 이석기가 제일 부자라는 말이 나오는 판에 무슨 자금으로 혁명을 하겠느냐”라고 말했다. 노동당 당직자 C씨도 “혁명지도부라는 민노당 청년회 상근자의 월급이 100만원 미만. 중앙당 당직자가 150만~200만원 선이며, 의원이 200만원대 돈만 가져가는데 무슨 힘이 있어 혁명을 말할 수 있겠나”라고 반문했다. 입으로만 혁명을 말할 뿐 실천력은 없는 한 줌의 ‘이석기 컬트(사교)’에 지나지 않는다는 것이다.

온라인 중앙일보·중앙선데이 안성규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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