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근식의 똑똑 클래식] 테너·소프라노가 주고받는 권주가 '축배의 노래'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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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페라 ‘라 트라비아타’의 한 장면.

‘라 트라비아타’를 감상하는 기쁨 중의 하나는 테너와 소프라노가 함께 하는 공연에서 빠지지 않는 귀에 익은 이중창인 ‘축배의 노래’를 제1막 서두에서 곧바로 들을 수 있다는 점이다. 1994년 LA에서 열린 쓰리 테너 공연에서는 앵콜곡으로 이중창이 아닌 쓰리 테너의 웅장한 목소리로 이 노래를 열창했고 이듬해인 1995년 8월, 잠실 올림픽 공원에서 내한공연을 가진 플라시도 도밍고는 홍혜경과 함께 춤까지 곁들이며 이 노래로 피날레를 장식했다.

멜로디만 들으면 마냥 흥겹고 신나기만 한 ‘축배의 노래’는 의외로 심각한 내용을 담고 있다. 축배를 들기 전에 부르는 권주가인 이 노래는 ‘마시자, 마시자’라는 알프레도의 선창으로 시작하는데 1절에서 사랑을 찬미하는 알프레도의 노래를 비올레타는 2절에서 ‘사랑은 덧없는 것, 이 순간을 위해 마시고 즐기자’며 삐딱하게 맞받는다. 계속해서 알프레도가 ‘쾌락보다는 진실한 사랑’이라고 노래하자 비올레타는 ‘순간의 쾌락이 모든 것’이라고 답하니 이쯤 되면 이 노래는 권주가라기보다는 두 주인공들의 엇갈릴 수 밖에 없는 운명을 예고하는 암시를 담은 노래라 하겠다.

“명사십리 해당화야 꽃 진다고 설워 마라. 명년삼월 봄이 오면 너는 다시 피려니와 가련하다 우리 인생. 오동추야 밝은 달에 임 생각이 새로워라 임도 나를 생각하는지 나만 홀로 이러한지 임도 또한 이러한지.” 아직도 가끔 잔치집에서 초대 받은 소리꾼들이 들려주는 우리네 권주가의 한 대목도 흥겨운 잔치 자리에서 즐기며 듣기에는 비장하기까지 한 가사이니 권주가 또한 ‘축배의 노래’와 상통하는 듯하다.

이탈리아와 한국. 반도국가의 공통점이 권주가에서 발견된다 하겠다. 여기서 오페라에 자주 등장하는 노래 형식인 카바티나와 카발레타에 대해 알아본다. ‘카바티나’는 기악반주가 따르는 서정적인 독창곡으로 양식이 단순하고 반복이 없으며 화려한 기교를 배제하는 점에서 ‘아리아’와는 구분된다. ‘카발레타’는 두 도막 형식의 아리아에서 두 번째 악절을 가리키는 것으로 느린 첫 악절에 비해 빠르게 되풀이되는 격정적 노래다.

사랑의 기쁨을 노래하는 카바티나와 혼돈과 갈등을 노래하는 카발레타의 대비를 통해 남녀 주인공의 심리를 묘사하는 라 트라비아타에서는 제1막의 마지막을 여주인공인 비올레타의 카바티나와 카발레타로 마무리 짓고 제2막을 알프레도의 카바티나와 카발레타로 시작하고 있다.

비올레타의 카바티나 ‘아, 그이인가’는 축제가 끝난 후 알프레도로부터 사랑의 고백을 듣고 홀로 남은 비올레타가 화려한 파리에서의 사교계 생활을 청산하고 보통 여자로 되돌아갈 앞날을 내다보며 부르는 사랑의 노래다. “이상하구나. 내 마음속에 새겨진 사랑이라는 말, 참된 사랑의 기쁨을 내 아직 몰랐건만 이번에 찾아온 건 진짜 사랑인가?”

김근식 음악카페 더 클래식 대표 041-551-5003
cafe.daum.net/the Classic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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