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삶과 추억] 광복절 나흘 앞두고 떠난 위안부 피해 할머니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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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에서 열린 ‘정기 수요집회’에 참석한 이용녀 할머니. [사진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

일본군 위안부 피해자 이용녀 할머니가 광복절을 나흘 앞둔 11일 오전 2시30분 경기도립의료원 포천병원에서 노환으로 별세했다. 87세.

 한국정신대문제대책협의회(정대협)에 따르면 1926년 경기 여주에서 태어난 이 할머니는 어린 시절 어려운 살림살이로 남의 집을 전전하며 생활했다. 이 할머니는 16세 때 주인집 아주머니의 큰 돈을 벌 수 있다는 말에 속아 부산항에서 일본행 배에 올랐다. 하지만 한 달 만에 뭍에 도착한 할머니를 기다리고 있던 건 일본군 위안소였다. 대만·싱가포르를 거쳐 미얀마에서 성노예로 고통받던 그는 해방 후 수용소에서 지내다 이듬해인 46년 귀국했다.

 이 할머니는 92년 정대협에 피해자 신고를 한 뒤 일본군의 비인도적 만행을 국제사회에 알리는 데 힘써왔다. 외상 후 스트레스 장애·척추관 협착증 등으로 정신과 육체 안팎으로 힘든 가운데에도 2000년 일본 도쿄에서 열린 일본군 성노예 전범 국제법정에 직접 참석해 증언했다. 당시 이 할머니는 위안부 강제동원과 성폭행이 국제법상 전쟁·반인도 범죄임을 분명히 밝히며 가해자들에 대한 형사처벌을 요구해 승소로 이끌었다. 지난해에는 다른 할머니 9명과 함께 서울 종로구 일본대사관 앞 소녀상에 말뚝을 세운 일본인을 서울중앙지검에 고소하기도 했다. 이 할머니의 별세로 등록 위안부 피해자 234명 중 생존자는 57명으로 줄었다.

 새누리당 민현주 대변인은 이날 논평을 통해 “끝내 일본 정부의 사과를 받지 못하고 돌아가신 이 할머니의 명복을 빈다”며 “아직까지 재판 결과를 이행하지 않고 있는 일본은 이제라도 위안부 문제에 결자해지의 모습을 보여야 한다”고 강조했다. 민주당 박용진 대변인도 현안브리핑에서 애도의 뜻을 표하며 “반드시 일본의 역사적 만행에 대해 사과를 받는 당당한 대한민국을 만들겠다”고 밝혔다. 민주당은 지도부 차원에서 조문 일정을 조정 중이다. 정대협은 14일 열리는 정기 수요집회에서 묵념 등 이 할머니를 기리는 행사를 진행할 방침이라고 밝혔다.

 유족은 2남. 빈소는 포천병원 장례식장 4호실. 발인 13일 오전 9시30분. 유해와 위패는 95년부터 지난해까지 머무르던 경기 광주 나눔의집에 모실 예정이다. 031-539-9444.

민경원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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