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설] 지하철은 '불쏘시개통' 이었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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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대구 지하철 방화참사는 인재(人災)였다. 원인 조사 결과 전동차의 방재 미흡, 지하철 역사의 환기시설 부족, 승무원.승객에 대한 교육 부재 등 안전시스템의 총체적 부실이 인명피해를 키운 것으로 드러나고 있다.

성수대교와 삼풍백화점 붕괴 등 대형사고 발생시 지적된 재난관리체계의 허점이 결국은 세계 역사상 둘째라는 지하철사고 기록으로 이어진 셈이다. 소는 잃었지만 외양간을 고쳐야 '사고 공화국'이라는 오명을 벗을 수 있다.

운행 중인 전동차의 벽.천장.좌석은 불이 붙으면 그대로 타고, 바닥재는 염화성분을 함유하고 있어 다량의 유독가스를 내뿜는다고 하니 국내 지하철에는 '불쏘시개통'이 달리고 있다 해도 과언이 아니다.

외국의 경우 전동차는 섬유강화플라스틱이나 알루미늄 수지 등 불연재나 내연재를 쓰도록 규정하고 있다. 게다가 지하철역 구내가 삽시간에 독가스실로 변한 것은 지하공간의 유독가스를 밖으로 배출하고 외부공기를 안으로 유입하는 제연(除燃)시스템이 부족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건설 비용을 줄여보겠다는 경제논리에 치우쳐 승객의 안전을 볼모로 잡은 것이나 다름없으니 한심할 따름이다.

정부 당국과 지하철관리기관의 안전 불감증은 이뿐만 아니다. 전동차의 운전실과 객차마다 화재감지장치가 설치돼 있는 외국과 달리 국내의 기준에는 언급조차 없다. 이 장치만 있었더라도 승무원과 승객이 서둘러 초기에 대응할 수 있었을 것 아닌가.

승무원의 안이한 대처도 사고를 키운 원인이었다. 승무원 안전수칙교육과 승객에 대한 대피훈련, 전문구조시스템의 도입 등이 뒤따라야 한다.

이와 함께 참사지역이 특별재난지역으로 선포된 만큼 후속 조치가 제대로 이뤄져야 한다. 과거 홍수로 특별재난지역으로 지정돼도 실태조사라는 이유로 행정.재정.금융상 지원을 지연하는 경우가 잦았다.

유가족과 피해자를 위로하고 대구지역의 민심을 다잡기 위한 신속한 지원이 시급하다. 특히 서울지하철 1호선 폭파 협박전화와 나이트클럽 방화 시도 등 모방범죄에 대해서도 대비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