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베 정권의 ‘야스쿠니 콤플렉스’

중앙선데이

입력

지면보기

335호 30면

8·15 광복절이 되면 늘 거론되는 게 일본의 과거사 반성 문제다. 이번 8·15 땐 아베 신조(安倍晋三) 총리 본인이 야스쿠니 신사 참배를 강행할 기세였으나 국제사회 여론의 역풍을 맞아 주춤하는 형국이다. 하지만 아베 내각 각료들과 자민당 의원들의 참배는 확정적이다. 필자는 일본의 이런 편집증적 증세를 ‘야스쿠니 콤플렉스’라고 부르고 싶다.

이 콤플렉스는 1985년 8월 나카소네 야스히로 전 총리가 공식적으로 신사 참배를 시작한 이래 아베 정부 들어 절정에 달하는 느낌이다. 일본은 이를 통해 재무장 강화와 아시아에서의 영향력 확대를 노리고 있다. G2(미국·중국) 시대를 맞이해 중국이 일본을 추월한 데 대한 조급증도 깔려 있다. 이는 제2차 세계대전 이후 정착된 국제질서에 대한 정면 도전이다. 이런 꼼수 앞에서 다른 나라들이 일본의 양식(良識)만을 믿고 가만히 앉아있기엔 그 증상이 너무 심각하다.

아베의 이런 책동을 내버려두면 ‘평화 애호국’의 기본 의무를 저버리는 것이란 명제를 국제사회에 던져야 한다. 일본에 독일의 자세를 배우라고 권하는 것도 이젠 신물이 난다. 차라리 다음 달 열릴 유엔 총회에서 대일 비난 결의안을 추진하는 방안을 적극 검토해야 한다. 이런 강압 외교의 전선에 중국과 동남아 국가, 러시아·유럽연합(EU) 등이 참여하도록 다양한 외교적 수단을 강구할 필요가 있다.

유엔 경제·사회·문화적 권리위원회(CESCR)는 이미 “위안부 문제와 관련해 ‘증오 연설’을 중단하라”고 일본 정부에 권고한 바 있다. 또 일본의 4개 시민단체 연합인 ‘일본군 위안부 문제 해결 전국행동’이 1991년 고 김학순 할머니가 위안부 피해자로는 처음 피해 사실을 공개했던 8월 14일을 ‘위안부 피해자 추모의 날’로 제정할 것을 유엔에 촉구하고 나섰다. 유엔 차원에서 위안부 추모일을 제정하자는 의미 있는 움직임이다. 위안부 문제와 일본의 잘못된 과거사 인식이야말로 일본의 양심적인 시민들과 국제 사회를 연결하는 어젠다가 될 것이다.

우리 정부는 이와 동시에 한·일 국민 사이에 깊어진 감정의 골을 메우는 양자 외교도 부지런히 전개해야 한다. 최근 여론조사에 따르면 양국 국민의 70%가 한·일 관계의 중요성을 인식하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그러나 일본인의 75%가 야스쿠니 신사 참배에 찬성하는 반면, 한국인의 60%는 반대하고 있다. 양측 사이에 파인 감정의 골이 위험한 수준에 이르렀음을 보여준다. 박근혜 대통령은 지난 3·1절 연설에서 “역사를 올바르게 직시하고 책임지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고 일본에 촉구했다. 또 역대 대통령들이 취임 초기에 빼놓지 않았던 한·일 정상회담을 연기함으로써 아베 정부에 강력한 메시지를 던지고 있다. 우리 정부는 이런 일관된 자세를 유지하되 대일 외교를 정상화하는 방안도 역시 고민해야 할 때다. 이런 과정에서 박근혜정부의 트레이드 마크인 ‘원칙과 신뢰’만큼 유용한 지렛대는 없다.

아베 정부의 태도에 진정성이 보이지 않는 상황에서 한·일 정상회담은 다음 달 모스크바에서 열릴 G20(주요 20개국) 정상회의, 올 하반기에 열릴 한·중·일 정상회담 이후에 추진하는 방안도 검토할 만하다. 그러면서 대일 공공외교를 다양한 방식으로 병행해 일본 사회 일각에 뿌리내린 혐한(嫌韓) 감정을 해소해야 한다.

미국도 아베 정부의 무책임한 도발적 언행을 수수방관해서는 곤란하다. 버락 오바마 대통령은 박 대통령과의 한·미 정상회담에서 “아시아 평화의 ‘린치 핀’ 역할을 하는 동맹국은 바로 한국”이라고 하지 않았는가. 미국이 추진하는 ‘아시아 회귀 정책(pivot to Asia)’은 한국과 동아시아 국가들의 신뢰를 얻지 못할 경우 결코 성공할 수 없다. 일본이 식민통치 정당성을 강변하면서 우경화의 길을 걷고 ‘아시아의 외톨이’가 된다면 미 국익에도 배치되는 것이다. 게다가 북핵 해결을 위해선 한·미·일 협력관계의 틀을 되살려야 할 시점이 아닌가. 미국이 일본에 대해 강온 양면 전략을 써야 할 이유다. 그럴 때 미국은 국제사회의 리더로서 확고한 신뢰를 구축할 수 있다.

중요한 건 아베 총리의 자세다. 지구촌 시대에 꼼수를 쓰기보다 이웃 나라와의 공존을 꾀하는 마음가짐을 가져야 한다. ‘야스쿠니 콤플렉스’ 하나 버리지 못하는 일본이 단지 경제대국이란 명분만으로 어떻게 유엔 안보리 상임이사국으로 진출하겠다는 것인가.



전옥현 서울대 외교학과 졸업 뒤 한양대 박사과정 수료. 국가정보원 비서실장·해외정보국장과 제1차장을 역임하고 주 홍콩 총영사를 지냈다.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