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7조 8000억원 중 887억원 환수 … 공무원 아니라 ‘전두환 법’ 적용 예외

온라인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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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우중(77) 전 대우그룹 회장은 올 들어 활발하게 대외활동을 펼쳤다. 베트남에서 시작한 ‘글로벌 YBM(영 비즈니스 매니저)’이라는 이름의 청년 기업가 육성 프로그램을 알리기 위해서였다. 이 프로그램은 옛 ‘대우맨’들의 모임인 대우세계경영연구회가 운영하는 형식으로 돼 있다. 김 전 회장은 글로벌 YBM에서 강연을 하고 교육과정을 챙기는 등 애정이 각별하다고 한다. 이 때문에 일명 ‘김우중 사관학교’로도 통한다. 그는 지난 4월 한 언론과의 인터뷰에서 “죽을 때까지 빚을 지고 가야 할 것 같다”고 말했다.

김 전 회장 일가가 해외에서 보유한 수백억원대 재산이 계속 공개되면서 천문학적 추징금을 받아내자는 여론이 제기되고 있다. 특히 최근 전두환(82) 전 대통령의 미납 추징금에 대한 검찰 수사와 맞물려 김 전 회장의 미납 추징금도 도마에 오른 형국이다.

김 전 회장은 대우그룹 분식회계를 주도한 혐의로 2006년 징역 8년6월과 벌금 1000만원, 추징금 17조9253억원을 선고받았다. 그는 “1999년 대우그룹 해체 무렵 개인재산을 채권단에 담보로 제공했기 때문에 남아 있는 게 별로 없다”며 3억원의 추징금만 냈다. 그러나 그의 은닉재산이 잇따라 발견돼 검찰은 지금까지 추가로 884억원을 거둬들일 수 있었다.

대표적인 게 2008년 대검이 ‘대우그룹 구명 로비 의혹’을 수사하면서 찾아낸 주식·미술품·고문료다. 그중 가장 규모가 컸던 것은 베스트 리드리미티드(옛 대우개발)의 주식 776만 주였다. 베스트 리미티드는 경남 양산시 에이원 골프클럽, 경남 거제시 드비치 골프클럽, 경기도 포천시 아도니스 컨트리클럽의 지분을 갖고 있다. 김 전 회장의 지분은 2012년 8월 자산관리공사를 통해 부산의 중견 수산업체 우양수산에 922억5880만원에 팔렸다. 국세청은 김 전 회장에게 이 과정에서 발생한 양도세 240억원를 내라고 알렸다. 이에 대해 김 전 회장은 공매대금을 추징금 대신 세금을 내는 데 쓰도록 해달라는 소송을 냈다. 세금은 미납 시 가산세가 붙어 계속 늘어나지만, 추징금은 시효만 넘기면 사라진다. 또 국세를 5000만원 이상 체납하면 출국이 금지될 수 있다. 김 전 회장은 지난달 5일 1심에서 패소한 뒤 항소한 상태다.

지난해 4월 대검은 선종구(66) 전 하이마트 회장의 횡령·배임 사건을 수사하면서 김 전 회장의 차명 주식 보유 사실을 밝혀냈다. 하이마트는 대우그룹이 87년 설립한 한국신용유통이 전신이다. 지분 14%는 김 전 회장이 대우그룹 임직원 18명의 명의로 보유했다. 검찰 수사 결과 선 전 회장은 이 회사의 임원으로 근무하다가 99년 김 전 회장의 차명 지분 14%를 넘겨받았다. 또 선 전 회장은 2002년 “김 전 회장의 차명 주식을 임의로 처분했다”며 자신을 업무상 배임 혐의로 고소한 정주호(68) 전 대우자동차 사장에게 회사 돈 30억원을 합의금으로 지급한 사실이 드러났다.

김 전 회장은 “다시는 경영에 복귀하지 않겠다”고 거듭 밝혔지만 이런 은닉재산 때문에 진심을 의심하는 사람도 많다. 하지만 미납 추징금을 환수하는 방안은 쉽진 않다. 이른바 ‘전두환 법’으로 알려진 ‘공무원 범죄에 관한 몰수 특별법 일부개정안’은 공무원 범죄만 대상이다. 김 전 회장의 아들 선용(38)씨가 2009년 매각한 베트남 부동산 개발권은 김 전 회장과의 관련성이 입증돼야 환수가 가능하다. 이스라엘과 프랑스 당국의 협조가 필요하다. 페이퍼 컴퍼니를 통해 지분을 인수한 것으로 알려진 600억원대의 베트남 골프장도 마찬가지다. 김선용씨가 김 전 회장의 돈으로 골프장을 사들였다는 게 밝혀져야 한다. 김 전 회장의 하이마트 차명 주식에 대한 국고 환수도 어렵다. 김 전 회장이 “실은 내 돈이다”라고 나서지 않는 한 말이다. 차명 주식은 두 차례에 걸쳐 소유권이 바뀌었기 때문에 민사소송을 거쳐야만 한다.

이철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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