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패션 한류 사업을 '단일화'하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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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

‘한국 디자이너들의 해외 시장 진출을 돕기 위한 글로벌 패션 프로젝트’. ‘세계화 정책으로 추진하는 글로벌 패션 브랜드 육성 프로젝트’. ‘한국 패션 브랜드의 글로벌 역량 강화를 목적으로 하는 육성 사업’.

 단어 순서만 바꾼 말장난이 아니다. 맨 처음은 문화체육관광부가 주축이 된 ‘컨셉코리아’. 두 번째는 서울시가 벌이는 ‘서울스 텐 소울(Seoul’s 10 Soul)’, 마지막은 한국패션협회가 산업통상자원부 지원으로 추진하는 ‘글로벌 브랜드 육성 사업’이다. 첫째·둘째가 디자이너들을 뽑아 뉴욕과 파리에 진출시킨다면, 셋째는 중견기업 브랜드 지원에 초점을 맞춘다. 취지에서 드러나는 목적은 하나. 패션 한류의 실현이요, 글로벌 브랜드 만들기다.

 공교롭게도 최근 이 세 프로젝트가 동시에 뉴스를 전했다. 컨셉코리아는 9월 뉴욕 무대에 설 디자이너 리스트를 발표했고, 서울스 텐 소울 역시 파리 진출 디자이너를 내정했다 (공식 자료는 곧 배포될 예정). 글로벌육성사업의 경우 5일 뉴욕에서 큰 행사를 벌인단다.

 정부나 지자체가 패션산업을 지원한다는 건 환영할 일이다. 굳이 창조경제까지 들먹이지 않더라도 이제 패션은 한 국가의 문화·생활 수준을 반영하기 때문이다. 하지만 패션계 인사들조차 목적이 하나인 사업들을 부처와 지자체가 각개전투식으로 벌이는 데는 고개를 갸우뚱한다. 빠듯한 예산으로 홍보·행사운영 등에 제각기 돈을 써야 하는 데다 정보 공유도 힘들어지니 비효율적인 게 뻔해 보여서다. 실제로 두 프로젝트에서 한 디자이너를 겹치기 선정하는 일이 생기기도 했고, 디자이너들 역시 자신의 연차나 업체 규모에서 어떤 프로젝트에 속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는다. 패션 한류 지원사업이 ‘단일화’돼야 하는 이유다.

 시도가 없었던 건 아니다. 2011년 지경부·문광부·서울시는 패션산업 업무협약서를 맺었고, 범부처 차원의 정책조정기구를 만들기로 합의했다. 이렇게 되면 해외 행사도 다채롭게 벌이고 ‘대한민국패션대전’ 같은 선발무대를 공동으로 주관하는 일이 가능해질 터였다. 왜 그런데 흐지부지됐을까. 담당자들의 얘기를 들어봤다. “일단 부처든 지자체든 자기 소관을 확실히 하고 싶어 하죠. 실적을 챙겨야 하니까요.” “추가 예산이 있어야 하는데 책정된 게 없어요. 그러니 각자 그냥 하던 대로나….”

 뉴욕·파리·런던에선 패션위크 진행, 신진 디자이너 발굴, 해외 진출 지원 등을 패션협회라는 단일 창구를 통해 진행한다. 누군가 그 나라 패션이 궁금하다면 그곳의 문을 두드리면 된다. 패션 선진국이라서만도 아니다. 베를린은 이미 베를린 주정부와 독일 연방 외교부가 뭉쳐 베를린 패션위크를 준비한다. ‘제5대 패션도시’라는 공통의 꿈을 꾸면서 말이다.

 패션계 여기저기서 ‘컬래버레이션(협업)’이 대세다. 구두와 건축이 만나고 티셔츠와 사진이 짝짓는다. 살아남기 위해 종(種)을 섞고 경계를 허문다. 패션 한류도 거기에 해법이 있다. 세계 시장의 장벽보다 프로젝트끼리 담이 더 높아서야 되겠나.

이도은 중앙SUNDAY 기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