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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재용, 빌라 구입 자금 노숙자 명의 통장으로 세탁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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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0면

24일 오후 서울 용산구 이태원역 부근에 있는 지상 18층, 지하 2층짜리 J빌라 입구에는 엘리베이터 공사 때문에 바리케이드가 둘러져 있었다. 화강암으로 외벽을 마감한 이 빌라는 3~5층이 대부분인 주변 건물들을 높이와 고급스러운 외관으로 압도하고 있었다. 2006년 완공된 이 빌라는 지하 층은 상가로 쓰이고 지상 5층까지 주차장, 그 위엔 아파트가 자리잡고 있다. 각 층마다 두 가구가 있고, 모두 75평(248㎡) 단일 평수다. 전두환 전 대통령의 차남 재용씨는 이 빌라 꼭대기층에 2009년부터 살고 있다. 바로 아래 층 두 채도 전씨가 보유하다 지난달 급하게 매각한 것으로 확인됐다. 인근 부동산 중개업소들은 이 빌라의 시세가 15억~20억원 선에 형성돼 있다고 전했다. 하지만 전씨는 각각 16억원과 14억원에 매각했다. 인근 W부동산 관계자는 “19억원에 거래되는 빌라인데 15억원에 나왔다”며 “모녀가 와서 두 채를 모두 사갔다”고 말했다. 빌라를 산 A씨(37·여)는 아이가 전씨의 자녀와 같은 유치원에 다니는 인연이 있는 것으로 확인됐다. 인근 H공인중개사 대표 이모씨는 “높은 층일수록 가격이 올라가 최상층은 20억원 선”이라며 “특수한 경우가 아니고는 주인들이 시세보다 낮게 거래하는 경우가 없기 때문에 거래는 잘 이뤄지지 않는다”고 말했다.

전재용씨가 개인 부동산개발회사인 비엘에셋을 통해 사들인 서울 서소문동의 빌딩(왼쪽 사진). 건물 임차인들과의 재계약을 거부하면서 소송이 진행 중이다. [중앙포토]▷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전씨가 이처럼 시가보다 훨씬 싼 가격에 빌라를 처분한 데는 이유가 있다는 게 검찰의 시각이다. 2001년 분양된 이 빌라의 첫 주인은 비엘에셋이었다. 전씨 가족이 100%의 지분을 갖고 있는 부동산 개발회사다. 문제는 빌라의 분양대금을 전 전 대통령으로부터 받은 비자금을 처분한 돈으로 마련했다는 점이다. 검찰에 따르면 전씨는 2000년 12월 외할아버지인 이규동씨를 통해 전 전 대통령 비자금으로 마련한 액면가 167억원 상당의 국민주택기금채권을 넘겨받았다. 그는 이 채권을 매각해 노숙자 김모씨와 사채업자 장모씨 등 명의로 된 통장 7개에 분산 예치한 뒤 지속적으로 기업어음 등을 사고 팔아 세탁과정을 거쳤다. 2001년 이 계좌에서 인출한 돈으로 빌라의 분양대금을 낸 것이다. 물론 분양받은 사람도 사채업자 류모씨 이름을 빌린 차명 거래였다. 이후 전씨는 주로 외국계 회사 임직원들에게 임대해주며 월세를 챙겨온 것으로 알려졌다.

 이 빌라의 정체는 2004년 전재용씨 비자금에 대한 검찰 수사에서도 불거졌었다. 하지만 검찰은 추징에 실패했다. 법적인 한계 때문이었다. 공무원범죄에 관한 몰수 특례법 5조는 “불법재산이 범인 외의 자에게 귀속되지 않은 경우에만 몰수(또는 추징)할 수 있다”고 규정하고 있다. 이미 소유권이 아들 재용씨에게 넘어갔고, 빌라 법인인 비엘에셋 명의로 등기가 된 이상 곧바로 회수가 불가능했다. 회수를 위해서는 전 전 대통령이 이 재산을 빼앗기지 않기 위해 처분했으니 이를 취소해 달라는 ‘사해행위 취소 소송’을 제기해야 했다. 하지만 검찰은 차일피일 미루다 시간을 놓치고 말았다.

 그러나 이 법이 지난 12일 개정되면서 사정이 바뀌었다. 국회는 법에 “범인 외의 자가 그 정황을 알면서 취득한 불법재산 및 그로부터 유래한 재산에 대해 그 범인 외의 자를 상대로 추징할 수 있다”(9조의 2)는 조항을 새로 끼워넣었다. 복잡한 소송 절차 없이도 추징이 가능해진 것이다. 추징 시효를 3년에서 10년으로 늘리는 조항(9조의 4)과 함께 이 법이 ‘전두환 추징법’이라고 불리는 대표적 이유다.

 전씨 측도 가만히 있지는 않았다. 국회 본회의에서 개정안이 통과된 당일인 지난달 27일 빌라 두 채를 급히 팔아치운 것이다. 이 빌라를 사들인 A씨 부부는 다음 날 우리은행 서울 평창동 지점에 9억원씩 모두 18억원의 근저당을 설정했다. 환수가 어렵도록 권리 관계자를 늘린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검찰은 환수에 큰 문제는 없는 것으로 판단하고 있다. 검찰은 우선 이 빌라에 대해 가압류를 해둔 상태다. 또 A씨가 전씨 부부와 특별한 관계에 있는 점에 주목하고 최근 A씨를 불러 매입 경위 등을 조사했다. 검찰 관계자는 “추징을 피하기 위한 행위가 분명한 만큼 거래 자체를 무효로 돌릴 수 있을 것”이라고 말했다.

최현철 기자·손수용 인턴기자 (서강대 독일문화 4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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