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사설

지자체, 분수넘는 세계대회 유치 이젠 그만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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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광주광역시가 세계수영선수권대회의 2019년 개최 도시로 확정됐으나 박수와 환호 대신 걱정과 한숨이 나오고 있다. 유치 과정에서 공문서 위조란 추문이 터져나온 탓이다. 광주시가 총리와 문화관광부 장관의 직인을 위조했으며, 정부가 1억 달러(1100여억원)를 지원키로 했다는 허위 사실을 서류에 넣었다. 문화부는 이 사실을 알고도 유치 확정 발표 직전까지 가만히 있다 뒤늦게 강운태 광주시장을 공문서 위조 혐의로 고발키로 한 데다 이 대회에 재정지원을 하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이에 강 시장은 “정치적 보복”이라며 강력 반발하고 있다고 한다.

 광주시의 서류 위조는 명백한 국기문란 행위다. 시 입장에서 아무리 대회 유치가 절실했더라도 결코 해서는 안 될 일이었다. 지자체가 중앙정부의 직인을 위조하고 서류 내용을 변조한다면 우리 정부가 보증하는 서류를 누가 신뢰할 것인가. 국제사회에서 우리 정부 서류는 믿지 못할 종잇조각으로 전락할 것이며, 앞으로 유사한 대회 유치에도 악영향을 줄 게 분명하다.

 시는 서류 위조까지 하게 된 원인에 대해 담당 6급 공무원의 잘못이라고 해명하고 있다. 6급 공무원 한 사람이 멋대로 국제수영연맹에 제출하는 서류를 조작할 수 있었다는 해명을 믿는다 하더라도 강 시장은 지휘 및 관리 책임에서 한 치도 벗어날 수 없다.

 이번 일의 핵심은 지자체의 분수를 넘는 과욕에 있다. 재정적으로 감당할 수 없는데도 일단 대회를 유치한 뒤 정부에 손을 벌리는 과거의 관행에서 크게 벗어나지 않았다. 인천만 하더라도 2014년 인천 아시안게임을 유치하면서 재정 위기에 봉착한 상태다. 경기장 건립 예산 1조5917억원 중 정부가 30%를 부담하게 돼 있으나 이를 70%까지 늘려 6300여억원을 더 지원해 달라고 손을 벌리고 있다. 전남 영암에 포뮬러원(F1) 경기장을 설립한 전남도 역시 지난 3년간 1000억원이 넘는 막대한 적자 때문에 골머리를 앓고 있다. 이처럼 지자체가 재정 능력은 생각하지도 않고 과욕을 부리면서 지역 주민들의 삶은 더욱 어려워지고, 중앙정부와의 관계도 갈수록 악화되고 있다.

 지난 18일 법원에 파산을 신청한 미국 디트로이트 시의 사례는 우리 지자체에 시사하는 바가 적지 않다. 시가 지방채 발행을 통해 빚을 내 살림살이를 방만하게 운영한 결과 대책 없이 늘어난 빚 때문에 주저 앉게 됐다. 올 4월 현재 적자규모만 9조원을 넘어선 우리 지자체도 사정은 크게 다르지 않다. 과시형 행사를 중단하고, 불요불급한 지출을 줄이는 등 자구노력을 하지 않는다면 부도와 파산은 남의 일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중앙정부 역시 지자체의 무분별한 대회 유치를 차단할 수 있는 대책을 세우는 게 시급하다. 지자체가 대회 유치에 따른 시설 등 인프라 건립 비용을 정부에 떠넘기지 않도록 대회 유치 심사를 하는 등 컨트롤 타워 역할을 하는 것도 한 방법이다. 분수 잃은 지자체의 대회 유치 경쟁은 이제 중단돼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