차이나 엑소더스 … 외국인 자금 닷새 만에 8억 달러 썰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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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3면

2007년 11월 미래에셋 차이나솔로몬 펀드에 3000만원을 넣은 정모(57)씨는 최근 환매를 결심했다. 6년 가까이 기다렸지만 수익률은 -53%. 은행에 넣었다면 불어났을 이자까지 생각하면 손실률은 80%를 넘는다. 당장 필요한 돈이 아니지만 환매하기로 한 건 중국 증시가 별 가망이 없다는 생각 때문이다.

 정씨 같은 사람이 한국에만 있는 건 아니다. 월스트리트저널(WSJ)은 4일 중국의 고성장을 기대했던 외국인 투자자들이 자금을 대거 빼가고 있다고 보도했다. 미국의 출구전략에 대한 우려로 신흥국 시장에서 돈이 빠지고 있지만 특히 중국으로부터의 자금이탈이 심하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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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데이터제공업체 EPFR 글로벌에 따르면 세계 펀드매니저들은 중국 주식시장에서 최근 18주 가운데 16주 동안 주식을 순매도했다. 5월 30일부터 6월 5일까지 8억3400만 달러가 순유출됐다. 금융위기가 한참이던 2008년 1월 이후 가장 큰 규모다. 이 때문에 상하이 종합지수는 올 들어 13% 가까이 떨어졌다.

 WSJ는 이런 외국자금의 이탈이 미국의 양적완화(QE) 축소 우려 외에도 중국 지도부에 대한 불신과 위안화 약세 예상에 따른 것으로 분석했다. 중국 국가지도부는 경제의 질적 개선을 위해 양적 성장은 다소 희생할 수 있다는 입장을 거듭 천명하고 있다. 지난달 29일 시진핑 국가주석은 “국내총생산(GDP)이 유일한 기준이 돼서는 안 된다. 경제성장률보다는 국민의 생활수준 향상과 지역사회 발전, 환경오염 개선 등 다양한 측면을 고려해야 한다”고 말했다. 이런 기조 아래 중국 정부는 올 들어 강도 높게 부동산 및 그림자 금융을 규제하는 정책을 펼치고 있다.

 올 들어 많이 오른 위안화 가치가 경제상황을 감안할 때 앞으로 약세로 돌아설 것이라는 예상도 외국인들이 중국 주식을 던지는 이유다. 여러 통화가 자유롭게 거래되는 홍콩의 역외 선물시장에서의 위안화 가치는 정부가 환율을 통제하는 중국 본토보다 2.8% 낮다. 그만큼 위안화 평가 절하 가능성이 크다는 얘기다.

 펀드평가업체 제로인에 따르면 국내 투자자들도 올 들어 중국펀드에서 6843억원을 빼갔다. 제로인 이은경 연구원은 “중국펀드는 지수가 오를 때와 떨어질 때 모두 환매 수요가 꾸준하다”고 전했다.

 떠나는 외국인을 보고 내국인 투자자들도 겁을 먹고 있다. 지난 5월 중국 A주(내국인 전용 주식시장)에서 지분 5% 이상을 보유한 기업 대주주, 경영진, 개인들은 247억 위안(약 40억 달러)어치의 주식을 내다팔았다. 월 매도 규모로는 2009년 이후 가장 많은 양이다.

 중국 본토 A시장보다 전망이 더 어두운 건 홍콩의 H시장이다. 홍콩에 상장돼 있는 중국 국영기업주식인 H주는 미국 긴축의 타격을 많이 받을 수밖에 없다. 이는 홍콩 달러의 가치가 미국 달러에 고정돼 있는 구조 때문이다. 미국이 양적완화를 시작하자 홍콩도 통화량을 늘려 두 통화의 가치를 일정하게 유지했다. 이 과정에서 홍콩 부동산 가격은 2008년 이후 두 배 이상 올랐다.

대우증권 허재환 연구원은 “홍콩 자산시장이 미국의 양적완화 이후 크게 올랐기 때문에 정책 변경에 따른 타격이 불가피하다”고 평가했다. 국내에서 판매된 중국 펀드 중 홍콩 H주에 투자된 금액은 9조2000억원으로 본토펀드 투자액(2조7000억원)보다 3배 이상 많다.

  하지만 질적 성장을 중시하는 정책방향이 대해 중장기적으로 중국에 대한 평가를 올려놓을 것이라는 반론도 있다. 전병서 경희대 중국경영학과 교수는 “장기적으로 보고 경제체질을 바꾸려는 중국의 노력이 효과를 볼 경우 다시 글로벌 자금들이 몰려올 것”이라고 강조했다. 4일 상하이 종합지수는 저가매수세가 유입되면서 0.6% 상승으로 마감됐다.

윤창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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