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로보다 달러가 좋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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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0면

북한이 지난해 12월 국내에서 달러 사용을 금지하고 대외무역에서 유로화를 결제 수단으로 사용하기로 한 조치가 자리를 잡지 못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사업가에 따르면 평양 보통강호텔 환전소의 경우 달러 기준환율(살때 1달러=1백47원)까지 적어놓고 달러를 북한 원화로 바꿔주고 있으며, 호텔 내 상점은 물론 일반 상점.음식점에서도 달러를 사용할 수 있다.

북한의 최대 미술 창작단체인 만수대창작사 전시관도 일반 판매 그림.공예품의 가격을 달러로 표시해두고 있다.

이 관계자는 "고려호텔과 옥류관 등의 호텔과 식당뿐만 아니라 기념품 가게의 경우 유로(살때 1유로=1백58원)보다 오히려 달러를 선호하고 있었다"며 "이는 달러 사용 금지와 외국인의 경우 외화를 원화로 바꿔 물건을 사도록 한 지난해 경제관리 개선조치가 실효를 거두지 못하고 있음을 보여준다"고 말했다.

이같은 사정은 평양뿐만 아니라 남포 등 지방 도시도 마찬가지인 것으로 알려졌다.

북한은 중국과 무역대금 결제 때도 여전히 달러를 사용하고 있다. 북한과 무역거래를 하고 있는 중국의 한 관계자는 "중국에서는 유로화가 공식 환율보다 10% 정도 낮은 가격으로 거래돼 중국 상인들은 달러를 선호하고 있다"며 "따라서 북한도 중국 상인들과 무역거래 때 이전과 같이 달러를 사용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와 관련, 북한이 유로화를 충분히 확보하지 못한 상황에서 기축통화(基軸通貨)를 유로화로 바꾼 것은 시작부터 무리였다는 지적도 나오고 있다. 최근 북한을 방문하고 돌아온 사람들은 한결같이 북한이 유로화 부족 현상을 겪고 있다고 입을 모은다.

특히 상점들은 5유로 이하의 화폐를 보유하지 못해 거스름돈을 달러로 대신 지급하고 있을 정도다. 1월 말 평양을 방문하고 돌아온 한 북한 연구자는 "안내원에게 '유로화로 표시해 놓고 왜 달러를 받느냐'고 묻자 '아직은 과도기라 어쩔수 없다'는 입장이었다"고 말했다.

정용수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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