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 북한 남윤호의 시시각각

군부대가 의원 기념촬영장인가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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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0면

남윤호
논설위원

호국보훈의 달이라 그런가. 6월엔 정치인들의 군 부대 방문이 이어지고 있다. 새누리당 지도부는 지난 20일 강원도 동해의 해군 제1함대를 방문한 데 이어 28일엔 서해 최전방 백령도에서 최고위원회의를 한다. 민주당 지도부도 24일 경기도 고양의 신병교육대를 찾아갔다. 모두 안보의지를 부각시키기 위한 듯하다. 두 정당은 홈페이지에 군 부대 방문 사진들을 홍보용으로 띄워놓았다. 물론 사진의 주인공은 군인이 아니라 당 지도부다.

 군은 정치인들이 굳이 오겠다는데 안 받아줄 수도 없는 입장이다. 군 역시 대국민 홍보가 필요하다. 훈련이나 작전에 방해가 되니 오지 말라고 했다간 국정감사 때 무슨 치도곤을 당할지 모른다. 민감한 인사나 예산에서 뒤통수를 얻어맞을 수도 있다.

 지휘관들이야 금일봉도 받고, 눈도장도 찍는 셈이니 부담이 크진 않을 것이다. 그러나 그 밑의 사병들은 뭔가. 군대 다녀온 이들은 다 알 거다. 높은 분 뜬다 하면 청소하느라 북새통 떨던 모습 말이다. 이게 정규 일과에 전혀 지장을 안 준다고 할 수 있나. 게다가 후방이면 모를까 백령도 같은 최전방은 24시간 최고의 집중력을 유지해야 하는 곳이다. 우르르 몰려온 높은 분들 영접하느라 경계가 산만해질까 걱정스럽다.

 그렇다고 나라 지키는 군인들을 격려하는 게 잘못이라는 뜻은 결코 아니다. 정치인은 군 부대에 얼씬도 하지 말라는 것도 아니다. 얄팍한 속이 훤히 드러나 보이는 이벤트성 방문은 곤란하다는 말이다. 군 부대를 찾은 정치인들이 신경 쓰는 게 연신 돌아가는 카메라겠나, 한번 보고 말 장병들 얼굴이겠나. 또 잘 맞지도 않는 군복 대충 걸치고 장병들과 기념사진 한 장 찍었다고 안보의지가 콸콸 샘솟겠나. 군 부대가 선거 포스터에 붙일 사진이나 찍는 곳인가.

 최전방 지역의 사병들은 월급 외에 한 달에 1만2000~1만4000원의 격오지(隔奧地) 수당이란 걸 받는다. 하루에 400원 남짓이다. 우리의 아들들은 그런 대우를 받으며 국방의무를 성실히 수행하고 있다. 그들은 정치인들 기념사진의 엑스트라가 아니다.

 진짜 군을 위문하고 격려하려면 조용히 다녀오면 된다. 진심으로 군을 위한다면 사진 찍어 홍보할 이유도 없다. 더운 날 시원한 수박을 싸 들고 가든지, 추운 날 따뜻한 커피를 타 가든지, 작아도 정성을 담아야 의미가 있다. 꼭 군 부대를 가지 않더라도 방법은 있다. 매년 예산 심사 막판에 염치 없이 끼워 넣는 민원성 쪽지예산을 확 줄여 사병 복지에 돌려 보라. 그 정도면 진정성을 인정할 수 있다.

 하지만 그동안 정치인들은 얼마나 우리 군을 아끼고 존중해줬나. 지난해 가을 국방부·합참 국정감사장에선 한 새누리당 의원이 합참의장 일행에게 ‘앉아 일어서’를 시켰다. 그 자리에 군의 명예와 사기에 대한 배려는 어림 반 푼어치도 없었다.

 2010년 북한의 연평도 포격 도발 직후엔 더 한심한 일이 있었다. 야당 중진이 피격 현장에서 소주병을 들고 “이거 진짜 폭탄주네” 하던 장면은 개그 한 편 본 셈 치자. 당시 우리의 사격훈련을 비난하던 민주당 지도부의 발언을 찾아보라. 전쟁을 낳을지 모르는 사격훈련은 중단돼야 한다, 이번 사격훈련으로 야기되는 모든 책임은 전적으로 이명박 대통령에게 있다…. 이런 말을 하고도 아직 금배지 달고 있는 분이 있다. 물론 그때와 지금의 민주당은 분명 다르다. 현 민주당의 안보의식을 의심하진 않는다. 다만 그들이 핏대 내던 기억을 지우기엔 3년이 너무 짧다.

 사병들이 입버릇처럼 하는 인사말에 “필승! 고생하십시오”라는 게 있다. 좀 어색하지만 실제 들어보면 그리 안쓰러울 수 없다. 정작 고생하는 건 자신들 아닌가. 그 고생을 감내하며 휴전선과 서해 북방한계선(NLL)을 지키는 게 그들이다. 편안한 후방에서 오늘도 드잡이판을 벌이는 잘난 의원님들, 부끄럽지도 않나.

남윤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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