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워지지 않는 악몽…고문 트라우마 치유 '김근태센터' 문 연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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고문의 충격은 10년, 20년이 지나도 마음엔 흉터로 남는다. ‘트라우마’, 정확히는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PTSD·Post Traumatic Stress Disorder)’라고 한다.

 유엔은 고문방지협약(1987년)이 발효된 6월 26일을 ‘세계 고문희생자 지원의 날’로 정하고 있다. 이에 맞춰 국내 첫 고문피해자 전문 치유센터인 ‘김근태 기념치유센터’가 25일 문을 연다. 2011년 고문 후유증으로 세상을 떠난 ‘김근태’의 이름을 딴 이 센터는 그와 똑같은 피해를 겪고 2차 장애를 겪고 있는 이들을 치유하는 순수 민간기구다.

 센터가 만들어지기까지는 실질적 운영을 맡게 될 이화영(54·여) 인권의학연구소장의 역할이 컸다. 이화여대 의대를 졸업한 이 소장은 2000년 미국 국립보건원 산하 국립암센터로 연구를 하러 갔다가 미국·유럽에서 외국 망명객이나 난민들의 고문 트라우마를 어떻게 치유하는지 목격하곤 진로를 ‘인권의학’으로 수정했다. 미국이 자국 공권력에 피해를 입은 이들은 물론 망명객·난민들을 치유하기 위해 98년 고문피해자 구제법을 만들어 예산을 책정하고 있는 걸 본 그는 2007년 귀국해 연세대에서 ‘인권의학’을 강의했다. 2009년엔 인권의학연구소를 만들어 고문피해자들과 용산참사 피해자 등을 상담해왔다. 이 연구소의 치유 프로그램이 ‘김근태 치유센터’로 발전하게 됐다. 김근태 전 보건복지부 장관의 부인인 인재근 민주당 의원이 내놓은 기금 1000만원을 종잣돈으로 해서 일가족 28명이 간첩으로 몰렸다가 재심을 통해 무죄가 확정된 송기복씨 가족이 국가배상금 중 1억원을 내놓고, ‘개미 후원자’들의 후원으로 3억원 정도를 마련했다. 함세웅 신부의 도움으로 서울 성북구 정릉동 성가소비녀회 수도원 내 성재덕관에 둥지도 마련했다. 이 소장은 23일 “치유의 첫걸음은 고문 생존자(피해자)들의 경험과 삶을 이해하는 일이 될 것”이라고 말했다.

 국가인권위원회 등에 따르면 고문 등으로 인한 피해자는 30여만 명에 달하는 것으로 추산된다. 취조실에서 나온 지 수십 년이 지났지만 그들은 아직도 ‘도피 중’이다. 인권의학연구소에 접수된 상담사례 다.

70년대, 남산 안기부(국정원의 전신) 대공분실로 끌려가는 차 속에서 가수 이장희의 ‘그건 너’를 들었던 A씨. 그는 지금도 남산터널을 지날 땐 몸이 움츠러든다. ‘그건 너’라는 노래, 그와 비슷한 단어만 들어도 경기를 일으킨다.

치과 가서 의자에 누우면 물고문 생각이 나고, 물리치료를 받으면 전기고문 같아서 숨을 쉬지 못하고 용을 쓴다. 그는 “아, 몸은 고통을 기억한다더니, 그게 이런 거구나”라고 말한다. B씨는 과하게 주변을 점검한다. 약속장소에 가면 비상구를 먼저 살피고, 뒤를 돌아봐야 안심이다. “고문 이후 한쪽 다리는 세우고 언제든 깨면 도망가는 자세로 자게 됐다”고 한다. 커튼 치는 걸 극도로 꺼리는 C씨는 불 다 켜놓고 베란다 문 다 열어놓지 않으면 잠이 안 온다. “바깥이 안 보이는 세상은 꼭 감방 같아서”라고 털어놨다.

 외상후 스트레스 장애의 더 큰 문제는 합병증이다. 가족과, 동료와, 친구와의 대인관계에 문제를 일으키며 ‘정상적인 삶’에서 멀어지다 우울증·폭식증 등의 합병증을 거쳐 결국 자살사고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다.

 인권의학연구소가 국가인권위의 의뢰로 2011년 ‘고문피해자 인권상황 실태조사’를 한 결과 70~80년대 고문을 경험한 213명 중 163명(76.5%)이 PTSD를 겪고 있었고, 자살시도를 한 이는 24.4%였다. 이 소장은 세상과 단절된 이들의 치유를 위해선 결국 소통이 필수라고 말한다. 그는 “충격적 사건과 고통스러운 느낌을 털어놓는 것, 말하지 못했던 고통을 말하고, 말할 수 있도록 도와주는 과정을 센터에서 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강민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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