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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2세 세탁 킹, 전화 단골만 300명 … 영국서도 얼룩 빼달래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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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제 02면

서울 마포구 용강동 신석초등학교 인근. 외국인은커녕 행인도 드문 곳에 ‘Mido Laundry’라는 영어 간판을 내건 세탁소가 있다. 115㎡(35평) 크기의 세탁소 안은 허름해 보일 지경이다. 그런데 ‘세탁소 옷걸이’에 걸려 있는 옷들이 예사롭지 않다. 민소매에 치렁치렁한 오렌지색 파티용 드레스가 있는가 하면 프라다·아르마니 등 고가 해외 브랜드의 와이셔츠도 빽빽하다. 100만원대 중반은 가볍게 넘는 이탈리아 브랜드 몽클레르의 패딩 점퍼도 눈에 띄었다. 미도세탁소 조수웅(72) 사장과 부인 주양순(62)씨는 “우리 집 세탁물은 대부분 고가 명품 옷”이라고 말했다. 인적 드문 주택가에서 ‘고가 명품 전문 세탁소’가 유지되는 비결은 뭘까. 무성영화 시절 ‘변사 1세대’였던 조월해 선생의 아들로 ‘꼬마 변사’ 출신인 조 사장이 직접 구성진 목소리로 들려준다.

정직 … 1200만원짜리 옷 세탁비도 5만원

서울 마포구 용강동 한적한 주택가에 있으면서도 ‘명품 전문 세탁소’로 이름난 미도세탁소 조수웅 사장이 고객의 양복을 다리고 있다. 72세의 나이에도 티셔츠에 찢어진 청바지 차림인 조 사장은 “처음에는 주머니 안감을 뒤집어 밖으로 뺀 다음 다리는 요령도 몰라서 양복에 주머니 자국을 내곤 했다”고 회상했다. [김성룡 기자]

 왜 세탁소 간판이 영어냐~. 원래 내가 1980년대 중반부터 이태원 그랜드하얏트호텔 근처에서 세탁소를 했거든. 2007년에 여기 용강동으로 옮기기 전까지는 근처에 각국 대사관 직원이며 외국 손님이 아주 많았지. 영국인 단골 중 한 분은 본국으로 돌아간 이후에도 한국 지사로 옷을 보내서 직원이 우리 집에 옷을 맡기러 온 적도 있어요. 귀국짐 상자에 물이 들어가는 바람에 옷 세 벌을 버려놨다더라고. 30년 동안 애지중지하던 옷인데 영국 세탁소 여기저기 다 맡겨봐도 얼룩이 안 빠진다는 거야. 혹시나 해서 한국으로 보내본 거지. 돈은 얼마든지, 1000만원이라도 주겠다는데 … . 나도 자신은 없었어요. 그런데 이것저것 해보니까 얼룩이 빠지데, 껄껄. 영국에서 고맙다고 전화도 오고, 동네에 소문이 쫙 퍼져서 손님들이 몰려들고.

 ‘명품 세탁소’로 자리 잡은 것도 이태원 시절 덕분이지. 외국인도 많지만 ‘회장님’도 많이 사시거든. 그것 때문에 오히려 처음에는 힘이 아주 많이 들었지. 우리 집에 옷을 안 맡기고 호텔 세탁소로 보내는 거야. 1200만원짜리 양복 같은 걸 그냥 동네 세탁소에 함부로 맡기겠소? 그분들이 우리 집 단골 되기까지 5년이 걸렸어요. 녹록하지가 않아. 호텔에 맡겨도 얼룩이 안 빠진 옷 같은 것을, 밑져야 본전이니까 한 개씩 맡겨보면서 시험을 해보더라고. 그런데 해내거든. 나중에는 호텔을 운영하는 회장님 댁도 우리 집에 맡겼다니까. 허허. 그 시절에 하루 수입이 100만원 넘고, 팁으로 세탁비보다 비싼 5만원을 받기도 하고…. 아주 장사가 재미있었지.

신뢰 … 청주까지 가 수거하고 배달해 줘

조 사장이 단골 집을 방문할 때 사용하는 차량. 이태원 시절부터 쓰던 것이라 영문 광고가 붙어있다.

 건물주가 바뀌면서 갑자기 이태원을 나오게 됐어요. 너무 갑작스러워서 그 동네 가게를 못 구한 거야. 용강동에 처음 와선 고생했지. 그런데 단골들한테서 전화가 오더라고. 지금 우리 집은 전화 손님이 대부분이에요. (휴대전화를 보여주며) 단골만 300명이 넘어. 아침마다 여의도·강남 등을 내가 직접 차를 가지고 가서 옷을 가져와요. 단골들은 재촉하진 않으니까 3~4일치씩 모아 동선을 잘 짜서 다녀요. 충북 청주까지도 왔다갔다 했어. 밍크 같은 건 택배로 못 부치니까. 한 차 가득 싣고 와서 세탁비만 150만원이 나왔네. 배달해 준다고 세탁비를 더 받진 않아요. 나이 먹어서 운전도 힘들고 기름값도 들지만 수십 년 단골들이니까. 76년 여의도에서 처음 세탁소 시작할 때부터 40년 돼가는 단골도 많아.

조 사장은 트리에탄올아민(TEA)·메탄올(MT)·톨루엔(To) 등을 섞어 자신만의 약품 20가지를 만든다.

 여의도에서 처음 세탁소 시작했을 때만 해도 기술이 형편없었어요. 우리 선친이 ‘아리랑’ 나운규 감독 영화의 변사로 아주 유명했어요. 하룻밤에 당시 도지사 한 달 봉급을 벌고 그랬다고. 나도 7살 때부터 아버지 따라다니면서 변사 노릇 했지. (변사 어조로 바꾸며) 아름~다운 그들에게 백발을 흩날리는~(중략) 아, 그 젊은 청춘이 돌아오려나~. 그런데 무성영화 시절 끝나고 그 많던 재산 다 날렸어요. 나도 악극단에서 원맨쇼하고, 유현목 감독 영화에 단역으로 출연했는데 집안에서 다들 ‘네 아버지 봐라’면서 말리더라고. 기술을 해야겠다 싶어서 차린 게 세탁소야. 기술자를 데리고 책 들여다보면서 공부했는데 책이 하나도 안 맞아요. 실크 블라우스 탈색되고, 세무(스웨이드) 옷 다 쭈그러트리고…옷값을 30만~40만원씩 물어줬어요.

 기술자들도 체계적인 게 없고 다 주먹구구식이야. 내가 기술을 알아야겠다 결심했어요. 다른 세탁소에까지 부탁해서 ‘사고’ 난 옷만 모아 가지고 얼룩을 이렇게도 빼보고 저렇게도 빼보고 숱하게 ‘실험’하면서 터득했지. 내가 빨간 얼룩 빼는 법을 너무 알고 싶은데 유명한 기술자가 절대 안 가르쳐줘요. 저녁을 대접하면서 만취했을 때 일부러 ‘형님, 제가 빨간 얼룩에 락스를 부었더니 사고가 났어요’ 하고 터무니없는 말을 했지. ‘아이고, 이 정신 나간 놈아! 그건 XX를 써야지!’ 하고 툭 답이 튀어나오더라고.

기술 … 처음엔 형편없어 일본서 4년 배웠지

 80년에 일본 세탁 기술자들이 세탁약품 팔아보려고 우리나라에 왔어요. 이거다, 싶었지. 그 사람들한테 술 사주고, 밥 사주고 친해져서는 4년 정도 일본에 살다시피 하면서 세탁 기술을 배웠어요. 일본은 기모노가 1억원, 2억원씩 하거든. 그렇다 보니 세탁비용도 300만원, 400만원씩이에요. 기술이 발달 안 할 수가 없지. 6대 할아버지가 볼펜 얼룩을 못 뺐다, 그리고 몇 대가 그 얼룩 빼는 법을 찾았다. 뭐 이런 집안 대대로 내려오는 노트도 있어. 영하로 온도를 유지하는 밍크 보관소까지 있는 걸 보고 입이 떡 벌어졌지. 진짜 열심히 배웠어요. 일본에서 배워온 덕에 이태원에 가게도 낼 수 있었지. 요새는 아웃도어 의류도 많이 해요. 처음 해보는 옷이라도 안쪽에 뜯어낼 수 있게 해놓은 시접이나 실 같은 게 꼭 있거든. 그걸 아주아주 작게 뜯어내서 시험해보고 하니까 세탁 사고가 안 나요.

품질 …드라이클리닝, 맑은 기름에 손빨래

 드라이클리닝을 손빨래로 하는 집은 우리 집뿐일 거야. 한 번도 안 쓴 맑은 기름에 내가 장갑 끼고 한 벌씩 직접 빨지. 한 벌 빠는 데 1시간30분씩 걸리니까 ‘돈 안 된다’고 다들 구박해요. 하지만 진짜 고급 옷은 기계를 쓰면 상할 수 있거든. 명품 세탁은 한 벌에 2만5000원, 코트는 5만원 정도 받아요. 칠순도 지났으니 요즘은 주말 다 쉬고 우리 부부 쓸 만큼만 벌면서 쉬엄쉬엄 해요. 대박예술봉사단이란 단체도 만들어서 원맨쇼나 악극도 하러 다니고. 그래도 주말에 택배가 오면 그거 한 벌 하려고 일요일에 나오기도 해요. 손님이 얼마나 애태우며 기다리겠어.

 옷이 잘못되면 옷값을 물어줘야 하기 때문에 아예 처음부터 옷을 안 맡으려는 세탁소가 많다더라고. 얼마 전에 어떤 아가씨가 아무 데서도 안 맡아준다고 원피스 두 벌을 갖고 왔길래, 한 벌에 5만원씩 받고 얼룩을 빼줬더니 90도로 인사를 하고 가데. 1만원짜리 약 쓰면서 아무리 기술료라지만 5만원 이상 받으면 안 돼. 그건 양심 문제지. 300만원짜리 바바리(트렌치코트) 얼룩 꼭 빼달라며 너무 바쁘다는데도 억지로 맡기길래 8만원 받은 게 지금도 마음에 걸리네.

글=구희령 기자
사진=김성룡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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