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한미군 2~3년내 사람 줄이고 첨단무기 증강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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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1면

노무현(盧武鉉)대통령당선자의 고위대표단인 정대철(鄭大哲)의원 일행의 방미를 계기로 주한미군 감축 내지 철수 여부를 두고 논란이 끊이지 않고 있다.

이는 한.미 동맹 50주년을 맞아 양국간 동맹관계의 재조정 필요성이 한.미 양국 일각에서 제기되고 있으며 최근 국내에서 일어난 반미 움직임 때문에 미측이 어떤 식으로든 주한미군을 재조정할 것이라는 추측이 사그라지지 않기 때문이다.

실제로 주한미군이 단기적으로는 아니더라도 2~3년 뒤 지금과는 규모나 편제가 달라질 가능성도 배제하기 어렵다.

◇"공식적으론 거론한 적 없다"=미국과 일본을 방문하고 귀국한 鄭의원은 "체니 부통령을 비롯해 럼즈펠드 국방장관 등 미 정부 고위당국자 중 누구하나 주한미군의 철수 또는 감군 이야기를 한 적이 없다"며 강력히 부인하고 있다.

국방부와 외교통상부도 한결같이 "양국 간에 주한미군 철수 문제 등을 공식적으로 논의한 바 없다"며 鄭의원의 답변에 무게를 싣고 있다.

차영구(車榮九) 국방부 정책실장은 지난 7일 "주한미군 병력 이동이 불가피하면 미측은 반드시 사전협조를 요청할 것"이라며 "그러나 아직까지 이 문제는 공식 논의한 적이 없다"고 철수 논란에 쐐기를 박으려고 했다.

그럼에도 정부의 일부 당국자와 외교가 일각에서는 "미측이 지난해 말부터 공식 및 비공식 채널을 통해 수차례 한국 측에 주한미군 철수문제 등을 꺼냈다"고 전한다. "한국이 원한다면 철수하겠다는 전제를 달았다"는 설명과 함께다.

이들은 盧당선자가 지난해 12월 30일 계룡대 3군본부를 방문한 자리에서 밝힌 '주한미군 감축 대비론'을 근거로 제시하기도 한다.

盧당선자는 당시 업무보고를 받는 자리에서 "미국이 주한미군을 감축한다는 전략을 세운 적이 있으며, 국방전략에 따라 감축 얘기가 나왔다가 중단되기도 했는데 최근에 또 (주한미군 감축)얘기가 나온다고 한다"고 말한 바 있다.

◇"한.미 간 골이 깊다"=미측이 주한미군 감축 문제를 제기하는 건 크게 두가지 배경 때문이라는 게 외교전문가들의 분석이다. 대북정책의 불협화음에서 비롯된 한.미 간의 '불신의 골'이 깊어서라는 게 그 첫째다.

북한에 강경 대응해온 부시 미 정부와 햇볕정책을 추구해온 한국 정부 사이에 한반도 문제와 대북문제를 보는 시각 차이가 너무 크고 그로 인해 갈등이 빚어지다보니 주한미군 철수문제 등이 등장하게 됐다는 것이다.

정부의 한 당국자는 "임성준 청와대 외교안보수석이 대통령 특사 자격으로 지난달 미국을 방문해 럼즈펠드 장관을 만나 한.미 동맹의 '재정립'얘기를 꺼내자 럼즈펠드 장관이 경색된 얼굴로 '한국이 원하면 철수하겠다'며 강하게 맞받아쳤다"고 전했다.

지난해 촛불시위로 촉발된 반미감정 속에서 탄생한 노무현 정부를 길들이려는 게 아니냐는 것이 둘째 분석이다.

외교전문가는 "盧정부에 대한 우려의 시각이 워싱턴에 팽배해 있다"면서 "주한미군 철수문제를 들고나온 것은 차기 정부가 한.미 동맹을 명실상부하게 유지할 것인가 아닌가에 대한 대답을 요구하는 차원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고 말했다.

그러나 새로운 군사전략 차원에서 주한미군의 일부 감축은 있을 수 있으나, 철수론이 급물살을 탈 전망은 거의 없다는 게 전문가들의 견해다.

한용섭(韓庸燮.국방대학)교수는 "부시 행정부 초기 군사력 재편을 논의하면서 해외주둔 미군 감축 얘기가 나오다 9.11 테러 이후 중단된 상태"라면서 "양국이 충분한 의견조율 과정을 거치면 더 이상 주한미군 철수 얘기는 나오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한.미 정상회담이 분수령'=주한미군 철수 및 감축 문제는 盧대통령 취임 이후에 있을 한.미 정상회담에서 가닥을 잡을 것으로 보인다. 다음달 말부터 내년 말까지 서울과 워싱턴을 오가며 열릴 '미래 한.미 동맹의 발전방향을 모색하기 위한 회의'도 정상회담에서 이뤄질 '큰 틀의 합의'를 기초로 할 수밖에 없기 때문이다.

윤덕민(尹德敏.외교안보연구원)교수는 "지금의 한반도 상황은 언제라도 위기국면이 초래될 수 있는 중요한 시기"라면서 "한.미 정상회담이 주한미군 문제를 비롯해 한반도 위기 타개의 분수령이 될 것"이라고 밝혔다.

이철희 기자 <chlee@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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