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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메라 든 청산도 사람들 …"사진 배우며 삶이 달라졌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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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17면

청산도에선 어디든 사각 틀만 들이대면 그림이다. 홍진선 목사는 섬사람들에게 카메라의 사각 틀로 세상을 보는 법을 안내해 줬다. 그저 산과 바다뿐이라고만 생각했던 섬마을이 다시 보이기 시작했다. [프리랜서 김성태]

일요일인 지난 5일 오후 5시. 전남 완도에서 배를 타고 남동쪽으로 바닷길을 50분가량 헤쳐가야 도착하는 청산도. 알록달록 깃발을 꽂은 고깃배가 정박한 포구 위, 쇠락한 단층 교회 건물에 마을 주민들이 모였다. 사진작가 겸 목사인 홍진선(48)씨와 전복 양식을 하는 김천희(55)씨, 김씨의 막내딸 신실(14·청산중 2년)양, 청산도 투어버스 기사 양치영(51)·김미경(51)씨 부부, 부부의 둘째 아들 유준(17·완도고 2년)군, 펜션업을 하는 배선자(53)씨 외에도 섬마을의 유일한 중학교인 청산중 학생 6명이 더 모였다.

 이날 모임은 지난 한 달간 포구 바로 앞 수협 건물 2층에서 열린 포토에세이 전시회를 정리하는 자리였다. 전시회의 주인공은 마을 주민 8명과 청산중 학생 7명, 완도고 학생 5명 등. 모두 청산도 주민들이다. 어른들은 지난해 6월 첫 모임을 시작한 ‘청산포토팩토리’ 회원. 아이들은 청산중 방과후 사진반이거나, 청산중을 졸업한 뒤 인근 완도고에 입학해 사진반을 하는 학생들이다.

 70여 작품이 출시된 이 전시회는 단순한 사진 전시회가 아니다. 마을 어른과 아이들이 지난 1년간 청산도 곳곳을 돌아다니며 풍광을 담았다. 청산도 앞바다뿐 아니라 올 1월 국가중요농업유산 1호로 지정된 구들장논, 전라도 섬 지역에서만 볼 수 있는 풀무덤 ‘초분(草墳)’ 등을 굳은살 낀 거친 손으로 담아냈다. 여기에 사진을 찍으면서 몸과 마음으로 느낀 감성을 에세이로 풀어 함께 전시했다.

한 달간의 전시회에는 관광객을 포함해 4500명 이상이 다녀갔다. ‘1년 농사’는 전시회뿐이 아니다. 232쪽짜리 포토에세이집 『파도가 쓴 시를 보라』도 그 결과물이다. 남해바다 어부와 관광버스 기사 등 섬마을 주민이 난생처음 글을 쓰고 사진을 찍어 만든 이 책은 서울 광화문 교보문고에서도 살 수 있는 엄연한 정식 출판물이다. 이들을 지도한 홍 목사도 별도로 『홍진선 최용석의 사진감성학개론』이란 책을 펴냈다. 2010년 1월 청산도 입도 이후의 삶과 사진에 대한 얘기를 잔잔하게 풀어냈다.

 완도로 돌아가는 연락선의 뱃고동 소리가 포구를 휘감을 즈음 김천희씨가 먼저 말을 꺼냈다. “전시회가 끝나고 돌아서는데 ‘사진을 배우지 않았다면 인생이 무엇인지도 모르고 살았을 것 같다’는 아찔한 기분을 느꼈습니다. 제 인생은 사진으로 새로운 전환점을 맞았어요.”

삶의 방식이 다르면 나이도 거꾸로 먹는 걸까. 홍진선 목사는 나이보다 10년은 젊어 보인다.

양치영씨는 “문화와 예술이란 단어를 내 입으로 말할 수 있다는 게 놀랍다”며 "사진을 통해 문명인이 된 느낌”이라고 했다. 양씨의 아내 김미경씨도 “남편·아들과 함께 사진을 배워 찍고 전시장을 꾸미고 책도 내면서 가족들과의 대화가 많아졌을 뿐만 아니라 내 삶이 한 단계 업그레이드된 것 같다”고 말했다.

 아이들도 바뀌고 있다. 꿈이 없던 아이들이 꿈을 얘기하기 시작했다. 내성적인 아이가 친구들과 뛰어놀기 시작했고, 잠시도 안절부절못하던 산만한 아이가 차분히 사물을 관찰하기 시작했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사각형의 카메라 뷰파인더 안을 들여다보고, 찍은 사진을 블로그에 올리며 사진에 대한 설명과 자신의 느낌을 글로 표현하면서 생겨난 변화다.

 위은지(14·청산중 2년)양은 “원래 내성적이고 집에서도 말을 잘 하지 않았는데 사진반에 들어간 뒤 성격이 활발해졌다”며 “부모님도 바뀐 내 모습을 대견해 하신다”고 자랑스러워했다. 은지양에겐 최근 꿈이 생겼다. 호텔리어다. 좋은 사진을 찍기 위해 책을 보고 인터넷을 뒤지다 외국의 다양한 모습을 보며 간접 견문을 넓힌 결과다. 목표가 생기니 영어공부가 재밌어졌다. 영어를 배워야 할 이유가 분명해졌기 때문이다. 그는 “공부에 취미가 없어 놀기만 했는데 사진을 찍고 글을 쓰면서 그동안 놀면서 시간을 보냈던 걸 반성하고 있다”고 했다.

 청산도 사람들의 섬 생활은 팍팍하다. ‘청산도(靑山島)’라는 섬 이름에서 느껴지듯 산도 바다도 모두 푸른 아름다운 섬이지만 주민들에겐 그저 치열한 삶의 현장이다. 인근 노화도·보길도와 달리 아래쪽 큰 바다에 접해 있는 섬이다 보니 파도가 거세 옆의 섬만큼 양식하기에 최적지는 아니다. 겨울철엔 바다에서, 여름철엔 논과 밭에서 사계절 쉼 없이 일해야 먹고사는 ‘반농반어(半農半漁)’의 마을이다. 외지인이 보기엔 감성이 넘쳐나는 환경이지만 삶의 의미와 감성을 생각하는 건 적어도 청산도 사람에겐 사치다.

 초등학교 셋, 중학교 하나밖에 없는 섬마을 아이들에게 섬은 세상으로부터 갇힌 감옥과도 같고, 조만간 뭍을 향해 떠나야 할 대상이다. 임권택 감독의 영화 ‘서편제’(1993)와 TV 드라마 ‘봄의 왈츠’(2006)의 촬영지로 널리 알려지고 2007년 아시아 최초의 슬로시티(Slow City)로 지정되면서 유명해지고 관광객들이 몰려들었지만 그렇다고 섬사람들의 삶이 본질적으로 변한 건 아니다.

 김씨는 “요즘도 카메라를 메고 다니면 좋지 않은 눈초리로 보는 이웃이 적잖다”며 “주로 아침·저녁에 인적이 드문 곳을 찾아 사진을 찍는다”고 말했다.

그나마 사람이 많이 다니는 포구 앞에서 전시회를 하면서 주민들 인식이 조금씩 바뀔 조짐을 보이고 있다. 김씨는 “어업을 하는 친구들이 구경을 와서 ‘이런 것 하는 줄 몰랐는데 대단하다’고 격려해 줬다”며 “앞으로 서울 전시회까지 하고 나면 주민들도 우리가 하는 작업의 가치를 좀 더 많이 이해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청산포토팩토리 전시회는 조만간 서울 여의도 국회의원회관에서도 열릴 예정이다. 16일엔 청산도 주민을 대상으로 한 사진 기초반도 문을 연다. 전시회에 들른 50대 중반의 구들장논 농부, 윗마을의 70대 할아버지, 50대 후반의 구멍가게 주인 등이 “나도 사진을 찍고 싶다”며 배움을 자청하고 나섰다.

 이 같은 변화 뒤에는 홍 목사의 ‘재능 나눔’ 헌신과 홍 목사를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단체들이 있었다. 홍 목사는 서울 목동의 한 교회에서 부목사로 활동하며 취미 삼아 사진을 찍었다. 사진관에서 일하던 형을 중학교 시절 어깨 너머로 지켜본 게 사진과의 첫 인연이었다. 청산도는 미국에서 비정부기구(NGO)로 등록된 VWI(Visual Worship Institute) 소속 사진가로 활동한 게 계기가 됐다. VWI는 ‘사진의 힘으로 사회를 아름답게 만들자’는 구호를 내걸며 사진을 찍는 국제단체다.

 그는 2009년 7월 VWI에서 한국의 아름다움을 담는 프로젝트를 진행할 때 동료 사진가 6명과 함께 9박10일 일정으로 슬로시티 청산도를 처음 방문했다.

그때 느낀 아름다움과 아쉬움에 다음 달 홀로 청산도를 다시 찾은 그는 초등학교와 중학교가 하나씩 폐교되는 걸 목격한 뒤 소명의식을 느꼈다. ‘사라질 학교를 지속가능한 학교로 바꾸고, 오지와 낙도의 청소년에게 다양한 학습 기회를 줄 수 있는 통로가 돼보자’는 다짐이었다.

 청산도에는 학원이 없다. 섬에서 가장 번화한 면 소재지 도청리에 술집과 카페는 있어도 흔한 영어학원 하나 찾아볼 수 없다. 굳이 배우고 싶다면 50분 동안 배를 타고 완도로 나가야 한다. 학원에 다니며 피아노와 영어·수학 등 상상할 수 있는 거의 모든 취미활동과 공부를 할 수 있는 도시 아이들과는 천지차이다.

그래서 시작한 게 청산중 학생들을 대상으로 한 방과후 사진반이었다. 2010년 3월부터 사진반 아이들을 대상으로 사진을 찍어 블로그에 올리고 1000자 분량의 감상문을 적게 했다. 홍 목사는 “아이들이 사진을 찍을 때 필름에 한 컷, 마음에 한 컷을 찍게 하기 위해 글을 쓰게 했다”며 “이렇게 하면 아이들 마음에 담겨 있는 감성을 끄집어낼 수 있겠다 싶었다”고 말했다.

 홍 목사는 한 달의 절반을 청산도에서 보낸다. 마을 건너편으로 이사가 버려진 교회 건물을 스튜디오 삼아 낮엔 청산중 학생들을 대상으로 방과후 사진반을, 저녁엔 섬마을 어른들 사진반인 ‘청산포토팩토리’를 지도한다. 한 달의 나머지 절반은 서울에 있다. 1년에 평균 5000만원이 드는 청산도 활동비를 지원할 후원자도 만나고 청산도 같은 오지 마을 지원을 위한 조직도 꾸리기 위해서다. 이렇게 3년여 동안 청산도와 서울을 오간 거리가 지구 한 바퀴(4만㎞)를 넘었다.

 그의 당장 목표는 청산도 사람들의 자립이다. 머잖아 마을 어른들뿐 아니라 학교를 졸업하고 성인이 될 아이들이 홍 목사의 뒤를 이어 청산도에서 재능 나눔을 계속할 수 있도록 하는 게 꿈이다. 그때가 되면 그는 ‘제2의 청산도’를 찾아 떠날 것이라고 했다. 또 다른 목표도 있다. 서울에 ‘사진감성연구소’를 세우는 일이다. 연구소를 자신처럼 재능 나눔을 할 수 있는 사람을 모으고 가르치는 교육기관 겸 본부로 만들 계획이다.

홍 목사는 “21세기 대한민국에도 교육과 문화에서 소외된 채 살아가는 사람이 많다. 도서산간 오지뿐 아니라 도시에도 경쟁에서 낙오돼 낙담하고 꿈을 포기한 사람이 적잖다”며 “한 개인의 봉사와 희생을 넘어 사회 시스템 차원으로 재능 나눔을 발전시켜 나가고 싶다”고 포부를 밝혔다.

완도=최준호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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