발로 취재한「한국동난사」|전 INS특파원「하이머프」씨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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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7면

6·25동란을 취재, 보도했던 전INS통신사(UPI전신) 특파원「에드워드·하이머프」(43·미국인)씨가 한국동란전사를 쓰기 위해 자료를 수집하러 19일하오CAL기편으로 15년만에 다시 한국에 왔다.
『여기가 정말 김포공항입니까』「하이머프」씨의 첫 마디. 전투기와「탱크」로 가득찼던 김포에 우뚝선 2층 본관 건물과 푸른 관제탑은 신기루처럼 보였다고.
동란이 일어난 50년부터 총성이 멎은 53년까지 부산·서울·평양·흥남·혜진까지 3년간 한국동란을 지켜본 그는 반도「호텔」에 짐을 풀자마자 외국특파원의 숙소였던 내자「아파트」로가 보았다.
『전쟁이 한창 치열했을 때 미군은 한때 탄약이 부족하였습니다.』이 사실을 보도한 것이「하이머프」씨의 잊을 수 없는 특종이었다.
「하이머프」씨는 남보다 빨리 취재하기 위해 휴전회담이 교착상태에 빠진 어느날상오2시 당시의 외무장관 변영태씨 집을 급습한 일도 있는데『이번에 꼭 변씨를 만나 사과겸 인사를 드리겠다』고 말했다.
총성이 멎자 귀국한「하이머프」씨는 58년까지NBC방송국 기사심사위원「뉴요크」WMGN방송국「뉴스」부장을 끝으로 10년간의 기자생활을 청산, 종군작가로 전환하여 66년9월 월남전선으로 갔었다.
『나는 오늘날 월남에서 50년대 한국을 다시 보고있다』고 말하는「하이머프」씨는『「존슨」대통령이 국내일부 반전론에 시달리고 있는 것은 월남전이 내란이 아니고 월맹의 침략이라는 점을 자세히 국민들에게 납득시키지 못했기 때문』이라고 설명했다.
세계일주 여행중인 부인과 함께 4일간 한국에 머무르면서「하이머프」씨는 판문점 등지를 돌아보며 한국동란사 자료를 수집, 특히 적진깊숙이 침투, 생명을 걸고 임무를 수행한 특공대 전사를 쓸 예정이다.
깡그리 부서진 서울만을 보고 떠났던「하이머프」씨는 서울의 야경을 바라보며 불사조의 어기찬 생명의 감격과 너무나 변한 이 현실 앞에서 외로움마저 느낀다고 어리둥절해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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