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버림받는 지의 투자」 교수 연구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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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한국의 대학은 교육기관이다. 그리고 많은 사학의 경우는 영리 교육기관이기까지 하다. 그러나 선진국의 대학은 「교육기관」인 동시에 「연구기관」이며 연구가 교육에 우선하는 대학도 많이 있다. 연구의 규모와 수준은 여러나라의 경제력과 입지조건, 그리고 학문의 전통에 따라 각각 다르지만 하나의 대학에서 연구가 차지하는 비중만은 비교가 가능하다. 미국의 「프린스턴」대학은 학교긔 전예산의 50%가 연구비다. 「컬럼비아」대학은 46%, 「워싱턴」대학은 31%, 「버클리」의 「캘리포니아」주립 대학이 28%, 일본의 북해도 대학이 40#의 학교예산을 연구비에 쓰고 있다. 「캐나다」의 「토론토」 대학이 18%, 인도의 「마하라자·사야지라오」대학이 14%이다. 세계에서 이름있는 대학들이 대체로 전체학교예산의 15%에서 50%를 연구비로 투입하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 한국의 경우는 어떤가. 한국의 대표적인 대학인 국립 서울대학교는 55년부터 67년까지 13년동안의 총연구비가 단돈 3천 6백 60만원. 길거리에 쏟아져 다니는 고급승용차 3대의 값이다. 이 가운데 1천 9백만원이 66년도 한해분이니까 나머지 12년간의 연구비의 참상을 짐작할 수 있다. 67연도의 연구비는 3백 95만원.
올해의 서울대학 총예산 12억원의 0.3%다. 시내의 조그만 살림집한채의 값에 해당하는 돈으로 「국립서울대학」이 1년간 연구를 한다는 것이다. 이정도의 연구비로 학문의 발전을 기대하는 건 굶주린 코끼리에 「비스킷」한개를 먹이고 기운내라는 거나 마찬가지의 「염치없는」요청이다.
서울대학교는 1년간 적어도 2억 5천만원의 연구비가 없으면 만족할만한 성과를 기대할 수 없다는 것이 대학인들의 일치된 견해다. 위정자가 전시효과에만 정신이 팔리고 국민학교 과외수업문제에만 집착하는 한 우리 학문의 장래는 기대하기 힘들다.
그러나 학문을 할수 있는 조건은 위정자에 책임이 있다해도 학문을 하는 사람은 어디까지나 대학인 자신이다. 대학인의 자세가 중대한 문제가 된다.
서울대학의 연구위원회는 연구 성과의 효율성을 철저히 검토하기 위하여 연구비에 의한 연구경험을 가진 3백 10명의 교수들에게 지난 7월 「앙케트」를 냈다. 그리고 세계적으로 이름있는 대학 70개에도 질문서를 내어 약 반수의 학교에서 회답을 받았다. 회답을 보낸 1백 73명의 교수의 의견과 외국의 경우를 비교 검토하면 대략 다음과 같다.
우선 연구비의 지급방법에서 ① 학과단위로 지급하는 바법과 ② 연구과제에 중점적으로 지금하는 방법에서 1백 9명(63%)이 ①을, 48명(28%)이 ②를 찬성하고 있다. 외국대학의 경우 ①의 경우는 전혀없다. 학자단위의 지금을 많은 교수가 원하고 있는 것은 연구 과제의 중요성을 평가하는 당국을 불신하는 면도 있고 중요한 연구를 해낼 자신이 없는 교수가 많다는 해석도 가능 가게 한다.
국비를 사용함에 있어 사용후 당국의 감사를 받는 것에 곤란이 있느냐, 없느냐라는 물음에 57명(33%)이 「있다」, 88명(51%)이 「없다」고 한다.
외국의 경우에는 대학이나 정부에서 연구비 사용을 철저히 감독한다. 미국에서는 FBI까지 동원될 정도.
연구과제 선정에 있어서 ① 각자가 제출한 과제를 심의하여 ② 국가적 견지에서 필요한 과제를 적합하다고 생각되는 개인 또는 「그룹」에 위촉한다에서 1백 9명(63%)이 ①을, 50명(29%)이 ②를 찬성한다. 자기의 능력을 무조건 인정하라는 교수의 수가 많다고 할 수 있다.
연구연한은 몇 년이 적당한가 하는 문제에서 3년이 77명(44%)으로 제일많고 2년이 54명(31%)이다. 연구의 「스케일」을 상당히 크게 잡는 걸로 해석된다.
과거에 연구비 보조를 받은 과제의 연구가 「성공했다」는 교수가 30명(17%), 「불충분했다」는 교수가 1백 35명(79%), 「실패했다」가 4명이다.
불충분 또는 실패의 요인은 87명(50%)이 연구비 부족을 들고 있다.
위정자는 성의를 가지고 생각해 보시도록.
연구결과의 처리에 있어 1백 17명(68%)이 『전문 학술지나 단행본으로 발표하는 것으로 족하다』고 한다. 심의평가가 필요하다는 교수는 37명에 지나지 않는다. 심사할 사람이 별로 믿음직하지 않다는 견해가 지배적인 듯 하다. 이것은 교수들이 유아독존을 내세우기 때문이 아니라 대학인구의 절대수가 모자라기 때문에 이러한 반응이 나온다.
누구나 김이 어떤 특수분야에 파고들면 그 방면의 독보적인 존재가 돼버리는 것이다. 연구비 부족과 함께 가장 심각한 대학의 문제가 바로 이것이다.
연구비 사용방법에서 현금을 직접 주지 않고 기구나 책을 단체로 구입하는 것이 어떠냐 하는데에 찬성하는 사람은 전무. 학교 당국의 행정능률에 대한 불신이 철저한 것 같다.
그리고 몇푼안되는 연구비가 연구에 보다 생활 보조비로 쓰일 수 밖에 없다는 현실이 나타나고 있다. 서울대학 당국도 스스로 한심하다고 생각하는지, 연구비를 「연구비」라고 하지 않고 「연구 조성비」라고 부르고 있다. 그러니까 연구 조성비로 한동안 생활고를 잠시라도 덜하게 하고 학구에 전념하라는 것이다. 연구비의 대폭적인 증액과 함께 다음의 것을 강력히 요구하는 교수들이 있다.
① 기초학과에도 힘써야 한다. 응용생산부문에만 편중하는 것을 잘못이다. ② 연구 결과를 인사문제와 결부시켜라 (외국대학의 경우 승진은 연구업적에 따라 결정된다.) ③ 연구비는 적시에 중점적으로 지금하고 자유로운 사용을 보장하라 ④ 연구비를 일방적으로 멋대로 감액하지 말라. ⑤ 연구비는 현재 연구를 진행하고 있는 사람, 과거 및 현재의 업적을 참고하여 유능하다고 인정되는 사람에게만 주라. ⑥ 상설기구를 두어 결과를 심의 평가하고 중간에 수시로 감사를 실시하여 계속 지급, 지급중지등을 결정하라.
그러나 서울대학이 13년간의 연구비로 3천 6백 60만원을 쓰고 있는 현상에 하나의 혁명이 일어나지 않는 한 이들 의욕적인 제의가 무슨 뜻이 있겠는가. 대학인들은 새해의 예산에 가느다란 기대를 저버리지 못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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