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결혼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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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1면

「러스크」 국무장관댁의 혼사는 세상을 떠들썩하게 만들고 있다.
「존슨」가 (루시양) 나 「험프리」가 (로버트군)의 경사에 이은 명문댁의 큰잔치이기 때문에 화제가 된 것은 아니다. 「러스크」 장관의 외동딸인 「마거리트·엘리자베드」양이 흑인 청년과 결혼한 것이다. 「러스크」 장관은 딸의 결혼으로 인해 『「존슨」행정부를 정치적으로 곤란하게 만든다면 사임하겠다』는 말까지 하고 있다.
그 「떠들썩」의 깊이를 짐작할 수 있다. 미국사회의 한 단면을 직시하는 기이한 느낌마저 든다. 관직에 대한 미국식 사고방식도 우리에겐 좀 회한해 보인다.
때마침 「러스크」 국무장관은 「존슨」 대통령의 요청을 받고 내년 대통령선거의 예비운동에 나설 참이었다. 그는 「베트남」정책을 변호하기 위해 활발한 전국유세를 떠나기에 앞서 그런 잔치를 벌였다. 흑인차별이 극심한 남부 「조지아」주 출신이기도 한 「러스크」 장관은 남부의 선거민을 어떻게 설득할지 궁금하다. 금년의 흑인폭동은 흑인문제를 어느 때보다 심각한 정치문제로 「클로스업」시켰다. 시기적으로도 몹시 불리하다. 더구나 전 미국의 16개주가 흑백결혼을 「터부」로 제도화하고 있는 실정이다.
만일 「엘리자베드」양의 「로맨스」가 「매스콤」에 의해 보다 일찍이 세상에 알려졌더라면, 이 흑백의 결혼은 아슬아슬했을 것이다. 개방사회에서도 보도 억제와 한 인간의 사생활 사이에 이루어지는 이해의 양극을 볼 수 있어 한층 의미 깊다. 신부편에서도 그들의 결혼이 공연히 「센세이셔널」해지는 것을 한사코 마다하고 있다. 결혼식장에는 지방경찰과 국무성 보안관들에 의해 보도진이 일절 접근하지 못했다. NBC도 결혼식이 끝난 뒤에 「러스크」가 빙그레 웃는 얼굴을 「캐치」했을 뿐이다.
그러나 그들 두 사람의 결혼은 이 세기에서나 그 「용감성」이 화제가 되어야 한다. 그들은 멀지않아 2세를 갖게 될 것이다. 그 2세는 새로운 세기와 함께 성년이 된다. 그가 맞을 세기에는 그들 부모의 결혼식이 오히려 기이한 「에피소드」가 될지도 모른다. 그런 사회가 이 지상에 이루어져야 한다. 우리는 인류의 장래에 회의를 품는 「페시미스트」가 되고 싶지는 않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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