용감한 4학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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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5면

○…저녁을 먹으려고 집안식구가 막 밥상에 모여 앉았을 때다. 난데없이 한 꼬마가 뛰어 들어왔다. 대전에 사는 이종사촌이었다. 윗도리 단추는 있는 대로 풀어헤치고 옆구리엔 「새소년」을 낀 모양이 우습기도 했지만 여간 놀라운게 아니다.
○…이제 국민학교 4학년밖에 되지 않은데다가 서울이라곤 처음 올라온 것이다.
세수를 시키곤 집안식구가 어떻게 찾아왔느냐고 물었다. 느릿느릿한 충청도 사투리로 대답했다. 『아버지가 가르쳐준 주소대로 찾아 왔어유!』꼬마는 씨익 웃었다. 아버지는 나더러 말씀하셨다. 『너 같으면 이놈 나이때 어림두 없다.』 여간 대견해 하시는게 아니었다.
○…저녁을 다 먹고 나서다. 꼬마는 내게로 슬그머니 다가오며 말했다. 『형! 나 창경원이랑 서울 구경좀 시켜 줘유!』나는 그러기로 약속을 하곤 동생을 데리고 산책을 나갔다. 꼬마는 낮에 차에서 시달린 피로도 잊은채 밤의 서울거리에서 마냥 즐거워했다. 조기(조기)방학에 조기더위니 조기개학 등 머리가 복잡해서 지내는데 뜻밖에 용감한 꼬마손님이 찾아와서 마음이 한결 가벼워진 기분이다. <정동균·21·서울시 성북구 길음동 543-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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