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소 정상회담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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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02면

「글라스보로」에서 역사적인 미·소 정상회담이 열렸다.
26일에는 다시 제2차 회담을 가질 예정이다. 미·소 정상회담이라 하더라도 「코시긴」 수상의 위치는 소련권력층의 서열로 볼 때 제3인자이다. 그 위에 최고권력자인 「브레즈네프」 서기장이 있고 명목상이나마 소련의 국가원수인 「포드고르니」가 있어 그가 반드시 최종결정권을 가진 것은 아니다.
또 이번 미·소 정상회담은 사전에 어떤 안건이나 또는 대체적인 토의 및 합의가 있어 그것을 공식화하는 범상적인 회담의 성격과 구분된다. 이번 미·소 정상회담은 「코시긴」이 돌연한 「유엔」방문과 더불어 홀망 간에 개최된 것이다.
따라서 미·소 정상회담에서 어떤 문제들이 어떤 귀결을 가져올 것인 지 자못 종잡을 수 없다. 굳이 미·소 정상회담의 성격을 지적한다면 미·소 양 수뇌가 공식서한이나 「홋·라인」등으로 접촉하던 것에서 일보 전진하여 상호의 면담으로 상대방의 태도와 인간을 파악하는 데 있을 것이다. 그밖에 상징적인 것으로서는 양대 강국이 평화문제를 위해 힘쓰고 있다는 인상을 세계에 주는 것이 될 것이다.
그런 만큼 이번 회담과 더불어 극적인 발표나 중대발표가 있을 것 같지는 않다. 특히 중공이 이번의 미·소 정상회담을 가지고 더욱 세차게 「미·소 결탁」 운운의 반소 선전에 나서고 또 「아랍」제 국민이 소련의 배신행위를 운위하고 있으므로 더욱 그러한 느낌이 든다.
그러나 이번 미·소 정상회담은 매우 중대한 것임을 부인할 수는 없다. 적대관계라 하더라도 대화가 잦으면 의사가 소통하기 마련이다. 친근한 사이라도 대화가 없으면 냉각하기 쉽다. 이러한 상식적인 원리를 생각해도 미·소 정상회담이라는 것은 그만큼 주목의 대상이 된다.
더우기 이번 미·소 정상회담은 미·소 외교의 전환점이 될 가능성이 있다. 그 동안이 미·소 외교의 실태를 볼 때 「공존시대」를 지나서 「협력단계」 또는 「문호개방시대」에 들어갔다는 말이 있다.
이를 액면 그대로 긍정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작년 10월 10일 「존슨」·「그로미코」 회담 이후 「우주공간의 평화이용에 관한 조약」이 타결되고 또 현안의 핵확산금지조약안에 미·소가 원칙적인 합의를 보았다는 것과 미국 상원이 소련과의 영사조약을 승인했다는 것 등등은 그 상황을 잘 설명하는 것이다. 일설에 의하면 미국이 독일문제에 양보하는 대신 월남문제에 소련의 양보를 요구했다는 말까지 있다.
이는 그렇지 않다는 부정적인 논거는 물론 실제적으로 미국의 북폭 강화 또는 최근의 중동사태로 다시 경화된 현상이 나타난 것도 사실이다.
그렇지만 미·소 외교가 종래의 양상에서 탈피하여 전환하고 있다는 것은 부인할 수 없다. 궁극적으로 미·소 화해가 이루어질 때 세계 정세에 미치는 영향은 심대한 것이 있을 것이다.
세계의 여러 중대한 국제문제가 있지만 미·소를 축으로 하는 협상「무드」는 그 해결의 관건이 된다. 현금 중동문제와 연관해서 「유엔」 긴급총회가 열리고 있다. 그러나 미·소가 대결을 계속하는 한 공전하고 말 것이다. 그밖에 월남문제·군축문제 할 것 없이 그 해결의 중요관건은 미·소가 쥐고 있다. 지난날 「라오스」 문제가 일단락 된 것도 1961년 6월의 「케네디」·「흐루시초프」의 「빈」 회담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소 정상회담은 매우 주목을 끌며 그 귀추야말로 예의 주시하지 않을 수 없다. 회담내용의 윤곽은 제2차 회담 이후에 나타날 성명서 등으로 더욱 뚜렷해질 것이지만, 이 회담의 진전여부는 곧 현재 가로놓여 있는 국제적인 중대문제들의 전망을 판가름할 수 있을 것으로 생각된다. 그러나 1959년 9월 「캠프데이비드」에서의 미·소 정상회담 이후 「베를린」과 「쿠바」에서 긴장이 고조된 경험을 상기하면 미·소 외교에는 경계심도 아울러 살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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