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제민주화 바람에 … 기업 바람막이 로펌들 '특수'

중앙일보

입력

업데이트

지면보기

종합 12면

#1. 웅진씽크빅·웅진케미컬 등 웅진그룹 계열사 5곳은 지주사에 일감을 몰아줬다는 이유로 2011년 12월 공정거래위원회로부터 34억여원의 과징금을 부과받았다. 웅진은 이에 불복해 공정위를 상대로 소송을 냈다. 서울고법은 1년여 만에 승소 판결을 내렸다. 웅진을 대리한 건 김앤장 법률사무소였다.

 #2. 교보생명은 8년 전인 2005년 종로세무서를 상대로 “법인세 990억원을 취소해달라”며 소송을 냈다. 상장을 전제로 법인세를 감면받은 교보가 상장을 하지 않자 과세 당국이 세금을 부과한 사건이었다. 교보의 법률 파트너는 율촌. 율촌 소속 변호인은 “관련 법 개정과 맞물려 상장할 수 없는 정당한 사유가 있었다”는 논리를 앞세웠다. 지난달 대법원은 교보의 손을 들어줬다.

▷여기를 누르시면 크게 보실 수 있습니다


 현 정부 출범 이후 경제민주화 바람이 거세게 불고 국세청이 세원 확충에 적극 나서면서 대기업의 ‘방패’ 역할을 맡은 대형 로펌이 특수를 누리고 있다. 법무법인 세종의 경우 지난해 공정위가 꼽은 10대 중요 사건 대부분을 ‘싹쓸이’했다. 김앤장·태평양·광장·율촌·화우 등의 로펌에선 정부의 세금·과징금 부과가 줄줄이 소송으로 이어질 것으로 보고 시장 선점에 나섰다. 한 대형 로펌 관계자는 “경제민주화와 관련해 1년 전부터 변호사뿐 아니라 회계사·변리사·세무사로 팀을 꾸려 대선 후보 공약을 분석하고 외국 사례를 수집하는 등 대기업 일감이 늘어날 것에 대비해 왔다”고 말했다.

 로펌의 대표적 대응 전략은 인력 스카우트. 공정위·국세청 출신 변호사뿐 아니라 공무원·회계사·세무사·변리사 등 전방위에서 인력을 충원 중이다. 공정거래 담당 인력 100여 명, 조세 담당 140여 명으로 국내 최대 규모인 김앤장의 경우 올 들어서만 전 국세청 납세자보호관(국장급) 이지수(49·여) 변호사, 전 조세심판원 조사관 최정미(42·여) 변호사를 영입했다. 광장은 최근 김교식(61) 전 기획재정부 기획조정실장을 스카우트했다.

 일감 몰아주기·상속 증여 등 대기업 관심사에 특화한 전담 ‘TF’(태스크포스)도 속속 꾸려지고 있다. 태평양·광장·율촌 등이 대표적이다. TF에 20여 명의 전담 인력을 배치한 태평양 관계자는 “기업들의 법률 수요에 효과적이고, 빠르게 대응하는 ‘원스톱’ 서비스를 제공하기 위해 마련했다”며 “로펌 입장에선 일반 기업에서 마케팅 수요에 대응하는 것과 다름없다”고 설명했다.

 화우는 공격적인 마케팅을 벌이고 있다. 올 초엔 기업 담당자들을 초청, ‘경제민주화 공약과 기업 환경 변화’를 주제로 세미나를 열었다. 공정위 부위원장을 역임한 손인옥(61) 고문이 주재했다. 5월 중에도 ‘일감 몰아주기’와 관련해 기업 피해를 최소화하는 방안을 찾는 내용을 주제로 세미나를 열기로 했다.

 로펌의 발 빠른 대응이 새로운 건 아니다. 로펌들은 과거에도 정권 교체기나 경기 변동기에 전략을 수정하곤 했다. MB정부에서 4대 강 사업 공약을 들고 나왔을 때 건설·부동산팀 인력을 충원하거나 환경 소송 대응팀을 꾸린 게 대표적이다. 율촌 관계자는 “이슈가 터지고 나서 준비하면 이미 늦다”며 “업계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정부 정책이나 법안 등에 대한 업계의 동향을 신속하게 파악하는 게 로펌 생존 전략 중 하나”라고 말했다.

 로펌의 이 같은 행보를 곱지 않게 보는 시각도 있다. 기업 사정을 속속들이 아는 공정위·국세청 출신 인력을 스카우트해 수임에 나서는 것은 ‘전관예우’ 논란을 불러일으킬 뿐 아니라 대기업의 불공정 행위를 바로잡는 경제민주화 취지를 무색하게 한다는 지적이다. ‘방패’인 로펌의 철저한 대비 태세에 비해 ‘창’인 정부의 적중률이 얼마나 될지 의문이란 얘기도 나온다. 실제 지난해까지 5년간 공정위가 잘못 부과한 과징금은 2817억원. 유일호(새누리당) 의원은 “과징금 환급률이 2009년 42%에서 2010년 58%, 2011년 55%로 증가 추세”라며 “고액 과징금 부과 사건의 경우 소송으로 이어지는 경우가 많아 부과만 할 게 아니라 소송 대비에도 신경 써야 한다”고 지적했다. 정부법무공단 관계자는 “대형 로펌이 최근 대기업 소송에서 줄줄이 승소한 데 주목하고 있다”며 “경제민주화 관련 정책 전반에 대해서도 광범위한 법적 자문이 필요한 시점”이라고 말했다.

김기환 기자

ADVERTISEMENT
ADVERTISEMENT