깊어지는 ‘4월 고민’… 박 대통령 "협상 땐 방패 안 내려놔"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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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근혜 대통령이 9일 청와대에서 열린 국무회의를 주재하고 있다. 오른쪽부터 박 대통령, 정홍원 총리, 류길재 통일?이동필 농림축산식품 장관. [최승식 기자]

북한이 남북 관계의 최후 보루로 여겨지는 개성공단을 놓고 협박 수위를 높이면서 박근혜 대통령이 곤혹스러운 상황에 처했다. 박 대통령은 한반도 신뢰 프로세스를 대북정책의 골간으로 내세웠다. 상호 신뢰를 바탕으로 대북 지원과 경제협력을 활성화한 뒤 비핵 문제를 논의하자는 구상이다. 하지만 북한이 자꾸 엇나가고 있다. 박 대통령의 고민은 이 지점에 있다. 김정은이 4월 들어 한반도 위기를 한껏 고조시키고 있지만 박 대통령에게는 주도적으로 사용할 마땅한 카드가 없는 형국이다.

 박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를 주재하며 ‘남북협력기금 카드’를 꺼냈다. 박 대통령은 “북한이 이런 식으로 국제규범과 약속을 어긴다면 앞으로 북한에 투자할 나라와 기업은 어디에도 없을 것”이라고 비판했다. 그러면서 “개성공단의 정상적 운영이 어려워지면 우리 기업의 피해 보전을 위해 남북협력기금이 지출될 것이고 그만큼 남북 교류협력을 위한 쓰임새는 줄어들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남북협력기금은 대북 지원과 교류협력사업을 지원하는 데 쓰인다. 용처가 북한인 셈이다. 올해 집행이 예정된 액수만 해도 1조8250억원이다. 박 대통령은 남북협력기금은 북한을 위해 쓸 돈인 만큼 북한이 알아서 판단하라고 메시지를 던진 것이다. 만약 북한이 개성공단을 폐쇄할 경우 그 돈은 고스란히 기업 피해 보전용으로 쓰인다는 점도 강조했다. 북한의 개성공단 근로자 철수라는 공격에 남북협력기금 전용으로 맞불을 놓은 것이다. 이 카드에 핵실험과 미사일 공격을 운운하는 북한이 전향적인 반응을 보일지는 미지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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하지만 청와대 관계자는 “박 대통령은 겉으로 ‘카드를 받으라’고 압박만 하는 듯하지만 여기에는 ‘카드를 받으면 지원하겠다’는 유화 제스처가 들어 있는 점을 북한이 주목해 봐야 할 것”이라고 말했다.

 취임 45일째를 맞은 박 대통령에게 4월은 시련의 달로 다가오고 있다. 청와대는 북한이 한·미 연합훈련인 키 리졸브(3월 11~21일)에 이어 독수리연습(3월 초~4월 30일)이 끝나는 이달 말까지 도발 수위를 계속 높여 나갈 공산이 클 것으로 보고 있다. 정부 고위 관계자는 “벼랑 끝 전술과 살라미 전술을 병행하는 북한은 아직도 쓸 카드가 많이 남아 있다”며 “추가적인 핵실험, 장거리 미사일 시험 발사 그리고 개성공단의 북한 노동자 철수 이후에도 몇 단계 추가 위협조치가 가능하다”고 말했다.

 계속되는 북한의 도발 위협에도 불구하고 박 대통령은 ‘방패론’을 유지할 전망이다. 박 대통령은 최근 들어 주변 인사들에게 “협상할 때는 방패를 내려놓지 않는다”는 말을 하고 있다고 청와대 핵심 관계자가 전했다. 이 관계자는 “협상 시 방패를 내려놓지 않는다는 말은 박 대통령이 지켜온 오랜 신조로 남북 대치국면과 개성공단 상황에서도 그대로 적용될 것”이라며 “북한이 아무리 도발 위협을 높인다 하더라도 끌려가는 일은 없을 것”이라고 말했다. 그러면서 “강하게 나오면 더 강하게 갈 것이고 언제라도 손을 내밀면 그 손을 잡을 것”이라고 덧붙였다. 청와대가 야당과 새누리당 일각에서 제기된 대북특사 파견 요구에 부정적인 입장을 밝힌 것도 이 같은 맥락이다. 류길재 통일부 장관이 지난 8일 국회에서 “지금 상황은 대화를 통한 협상으로 해결될 국면이 아니다”고 말한 것도 박 대통령의 의중이 반영된 것이란 분석이다.

 박 대통령은 9일 국무회의에서 북한을 자극하지 않으면서도 강경한 의지를 표시했다. 그는 “위기를 조성한 후 타협과 지원, 위기를 조성한 후 또 타협과 지원, 끝없는 여태까지의 악순환을 언제까지 반복해야 하겠나”고 말했다. 그러면서도 남북 대화의 여지까지 닫지는 않았다. 박 대통령은 “북한은 그릇된 행동을 멈추고, 한민족 전체의 미래에 도움이 되도록 올바른 선택을 하기 바란다”고 촉구했다.

 한편 북한의 중거리 미사일 발사가 이르면 10일 이뤄질 것이란 전망이 나오면서 정부의 움직임도 긴박해졌다. 김장수 청와대 국가안보실장은 수시로 상황점검회의를 진행하며 국방·외교·통일부 장관 등과 유선으로 상황을 논의했다. 국방부는 북한이 미사일 발사 준비를 하고 있는 것으로 보이는 원산과 서해안의 동향을 파악하기 위해 동해에 2척, 서해에 1척의 이지스함을 배치했다.

글=신용호 기자
사진=최승식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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