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설의 들국화, 다시 ‘행진’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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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24면

들국화의 4일 무대는 각별했다. 1,2집의 히트곡들을 모아 메들리 형식으로 선사했다. 드러머 주찬권도 기타를 매고 가세했다. 왼쪽부터 최성원·주찬권·전인권. [사진 들국화컴퍼니]

‘돌아온 형님들’의 행진이 드디어 시작됐다. 한국 록의 전설 들국화. 지난해 오랜 공백을 깨고 재결합, 컴백공연을 하며 벅찬 감동을 안겼던 그들이다.

 4일 오후 8시 서울 마포구 인터파크아트홀. 그들의 새 출발을 알리는 10일간의 공연 ‘다시 행진’(14일까지)이 개막했다. 신곡 두 곡을 발표하는 특별한 무대였다. 18년 만의 신곡인 ‘걷고 걷고’ ‘노래여 잠에서 깨라’를 부르는 순간은 숙연함마저 감돌았다. 전설의 귀환을 넘어, 전설의 새로운 출발을 알리는 자리였다.

 객석을 가득 채운 팬들은 2시간 내내 전곡을 합창했다. 들국화와 함께 1980년대 엄혹한 시기를 보냈던 40~50대뿐 아니라 교복 차림의 10~20대도 눈에 띄었다. 개그맨 신동엽, 가수 알리, 음악평론가 임진모, 소설가 박민규·천명관 등 유명인사들도 군데군데 자리를 잡았다.

 들국화의 오랜 팬이라는 신동엽은 무대에 올라 고교 시절 학교 축제에 들국화를 섭외하러 갔던 사연을 공개했다. 당대 최고의 스타 들국화는 까까머리 고교생의 패기에 반해 축제에 참가해줬다. 신동엽은 “들국화를 들으며 자랐다. 이제 돌아왔으니 롤링스톤즈보다 더 오랫동안 우리 곁에 남아달라”고 말했다.

 객석에서 불쑥 일어난 20대 군인은 휴가 중이라며 엉뚱한 청을 했다. “군 생활의 어려움을 들국화 음악으로 달래고 있다. 세 분이 제 이름을 한번 불러 주시면 큰 힘이 되겠다”. 객석의 폭소 속에 전인권·최성원·주찬권 세 사람이 돌아가며 이름을 불렀다.

 ‘다시 행진’이라는 타이틀에 걸맞게 첫 곡은 ‘행진’으로 시작했다. 전인권의 목소리가 칼칼하게 울렸다. 시원하게 고음을 내지를 때는 환호성이 쏟아졌다. 컨디션 조절에 실패한 듯 최성원의 목소리는 간간히 흔들렸지만 팬들은 아랑곳하지 않는 듯 했다.

 전인권은 특유의 느릿한 말투로 “요즘 정말 열심히 연습하구요, 목소리에 나쁜 건 절대 안 하고요. 첫날이지만 앞으로 잘해줄게요”라고 했다. 그리고 ‘그것만이 내 세상’‘사랑한 후에’ 등에 이어 주찬권이 기타를 매고 앞으로 나와 히트곡 메들리를 함께 부르기도 했다.

 이날 하이라이트는 역시 신곡 무대. 비트감이 흥겨운 ‘노래여 잠에서 깨라’(전인권 작사, 최성원 작곡), 서정적인 멜로디의 ‘걷고 걷고’(전인권 작사·작곡)가 이어졌다. 두 곡 모두 한 귀에 와서 박혔다. 읊조리듯 ‘내가 세상에 태어난 것도 모두 어쩌면 축복일 지 몰라. 걷고 걷고 걷는다. 멀리 반짝이는 별 지나’(‘걷고 걷고’) 라는 대목은 코끝을 찡하게 했다. 고달픈 음악의 새벽길을 걸어온 자신들에 대한 격려처럼 들렸다.

 ‘내가 나를 다시 사랑할 수 있게, 내가 나를 다시 느낄 수 있게 노래여 잠에서 깨라’(‘노래여 잠에서 깨라’) 역시 스스로에게 거는 주문 같았다. 영원히 잠들지 않는 음악을 하겠노라는 선언이기도 했다.

 음악평론가 임진모씨는 “전인권의 음악은 ‘폭발물’이란 점을 다시 환기시켜 준 무대였다”며 “귀에 편하게 감기는 음악만이 판치는 풍토에 한 방을 날렸다. ‘노래여 잠에서 깨라’는 들국화 컴백의 지향점이 될 것”이라고 평했다.

 앙코르 마지막 곡은 요즘 그들이 항상 엔딩 곡으로 택하는 ‘걱정 말아요’. 지나간 모든 것을 감싸 안으며 아직도 꿈 꾸노라는 고백 같은 노래다. ‘지나간 것은 지나간 대로 그런 의미가 있죠. 우리 다 함께 노래합시다. 후회 없이 꿈을 꾸었다 말해요…우리 다 함께 노래 합시다. 새로운 꿈을 꾸겠다 말해요.’ 들국화는 신곡을 담은 새 앨범을 다음 달 내놓을 예정이다.

양성희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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