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대女 노숙자 꼬셔 술먹인후…' 30억 진실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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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심 유죄→2심 무죄→3심 파기환송. 같은 사건을 놓고 재판마다 판단이 엇갈렸던 이른바 ‘시신 없는 살인 사건’에 대한 파기환송심에서 피고인 손모(여·42)씨에게 무기징역이 선고됐다. 부산고법 제2형사부는 27일 사건의 실체를 보험금을 노린 살인극이라 결론짓고 손씨에게 살인, 사체 은닉, 공문서 위조 등 13가지 혐의를 적용했다. 사건 발생은 2010년 6월로 거슬러 올라간다. 부산에서 사업 실패로 1억원의 빚을 지고 기초생활수급자가 된 손씨는 대구의 한 여성노숙자쉼터를 찾아갔다. 어린이집 원장 행세를 한 손씨는 “월급 130만원에 보육교사를 하게 해 주겠다”고 쉼터에서 생활하고 있던 김모(여·26)씨를 속여 부산으로 데려갔다. 다음날 새벽 김씨는 손씨의 차 안에서 숨진 채로 발견됐다.

 손씨는 급히 시신을 병원으로 옮겨가 급성심근경색으로 숨졌다는 내용의 사망진단서를 발급받았다. 하지만 진단서에 기재된 사망자의 이름은 손씨 자신이었다. 손씨가 병원에서는 숨진 김씨 행세를 하며 의사를 속인 것이다. 아무런 의심 없이 묻힐 뻔한 이 사건은 손씨가 상속권자인 어머니와 함께 보험금을 찾다가 가입신청서와 보험금 청구 신청서의 필체가 같은 점을 수상히 여긴 보험사의 제보로 들통이 났다. 손씨는 사건 석 달 전부터 6개의 보험에 가입해 매달 300여만원을 납입했고 상속권자인 어머니가 30억여원의 보험금을 타게 돼 있었다.

 뒤이어 벌어진 재판의 판단이 엎치락뒤치락하게 된 건 살인의 직접 증거인 시신이 남아 있지 않다는 점 때문이었다. 1심 재판부는 정황 증거만으로도 살인 혐의가 인정된다며 무기징역을 선고했다. 하지만 2심 재판부는 “김씨가 돌연사나 자살했을 가능성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며 시신 은닉 및 사기 혐의만 인정해 징역 5년을 선고했다. 판결은 다시 대법원에서 뒤집혔다. “손씨의 살해 동기가 충분한데, 김씨가 돌연사나 자살했을 가능성이 있다고 살해 혐의를 무죄로 판단한 것은 심리가 모자란다”며 사건을 부산고법으로 돌려보냈다.

 사건을 돌려받은 부산고법 제2형사부는 27일 1심과 같은 판단을 내렸다. 재판부는 “수입이 없는 손씨가 사전에 고액 보험에 다수 가입했고, 인터넷에서 독극물(메소밀)을 비롯해 살해 방법을 검색하는 등 살해 동기가 충분하다”고 판단했다.

 이에 대해 손씨는 재판 과정에서 “보험에 가입하고, 인터넷에서 독극물을 검색한 것은 모두 자살 방법을 알아보기 위해서였다”면서 “김씨가 차에서 함께 술을 마시다 갑자기 숨지자 순간적으로 내가 죽은 것처럼 속이면 보험금을 타낼 수 있겠다는 생각에 이 같은 일을 했다”는 주장을 펴왔다. 손씨는 파기환송 결과에 대해 한 차례 더 대법원에 상고할 수 있다.

위성욱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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