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접대 동영상은 1%' 경찰, 갑자기 말 바꾸고…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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건설업자 윤모(52)씨의 성접대 의혹 사건을 수사 중인 경찰이 수사 방향을 선회하려는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성접대 동영상’이 증거 능력을 의심받고 성접대와 관련한 참고인 진술도 엇갈리는 등 수사가 난관에 부딪혔기 때문이다.

 경찰은 내부적으로 수사 초점을 ‘성접대 사건’에서 ‘브로커 사건’으로 옮긴 것으로 전해졌다. 경찰 관계자는 27일 “성접대 동영상은 아주 작은 줄기에 불과할 뿐 이번 사건의 핵심이 아니다”라며 “윤씨의 고위층 로비 의혹에 대해 수사력을 모으고 있다”고 말했다.

 경찰은 윤씨가 공사 수주를 도맡아 하는 ‘건설 브로커’로 활동한 것으로 보고 있다. 이와 관련, 경찰은 윤씨가 2008년 말 강원도 홍천군의 골프장 개발 사업에 인허가를 받아주는 조건으로 참여했다는 의혹에 대해 조사 중이다. 윤씨는 또 2006년 서울 양천구 목동에서 재건축 사업을 하면서 서울 소재 저축은행으로부터 약 200억원의 대출을 받은 것으로 나타났다. 경찰은 윤씨가 개발이 확정되지도 않은 상태에서 수백억원을 대출받은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경찰은 윤씨가 2003년 5월 서울 동대문구 H상가 개발비 70억원 가운데 1억2000만원을 당시 총경급 경찰 간부 Y씨에게 지급한 경위에 대해서도 조사 중이다. 상가 개발비를 유용해 Y씨에게 건넨 윤씨는 차용증도 작성하지 않은 것으로 전해졌다. Y씨는 경찰에 “윤씨에게 빌려준 돈을 돌려받은 것”이라고 해명한 것으로 알려졌다. 경찰은 또 윤씨의 통화내역에서 검찰·경찰청 명의의 유선전화나 업무용 휴대전화 등 10여 개 번호로 통화한 것을 확인했다. 경찰은 이 통화가 사건 무마 등을 위한 부적절한 통화일 가능성에 대해 수사 중이다.

 경찰은 이번 사건을 사회 고위층이 복잡하게 연루된 ‘대형 브로커’ 사건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윤씨 사건에 연루된 의혹만으로 현직 법무부 차관이 물러나는 등 파장이 커지자 내심 긴장하는 분위기다. 거론되는 유력 인사들의 불법행위를 구체적으로 입증하지 못할 경우 후폭풍이 만만치 않을 것이기 때문이다.

 유력 인사들을 겨냥한 사건일수록 혐의가 특정된 상황에서 수사를 진행하는 게 일반적이다. 그러나 윤씨 사건의 경우 이례적으로 내사 사실을 언론에 공개하는 등 경찰이 의혹을 부풀렸다는 지적이 나온다. 경찰은 수사를 개시한 지 엿새가 지난 27일에야 김학의 전 법무부 차관 등 사건 관련자 10여 명에 대한 출국금지를 요청했다. 사건의 핵심 당사자인 윤씨에 대해선 소환조사도 하지 않은 상태다.

  특수수사통인 한 검찰 간부는 “동영상 원본도 없고 관련자들이 ‘성접대는 없었다’고 하는 마당에 로비 의혹에 집중한다는 건 애초에 경찰이 설명했던 성접대 의혹 수사에서 비켜나간 모양새”라고 지적했다. 이에 대해 경찰 핵심 관계자는 “‘성접대 동영상’은 전체 수사에서 1%도 안 되는 비중이다. (윤씨의) 청탁과 이권 개입 등을 중심으로 차근차근 수사 중”이라고 말했다.

정강현 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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