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피니언 김영희 칼럼

거꾸로 가는 독도 대응

중앙일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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종합 35면

김영희
김영희 기자 중앙일보 고문

독도 문제 대응에서 알아야 할 것이 있다. 첫째, 시마네현에는 2001년 일본정부 검정을 통과한 후소샤의 문제의 역사교과서를 채택한 학교가 하나도 없다. 그래서 독도와 역사교과서를 묶어 대응하는 것은 전략 미스다. 둘째, 시마네현 의회가 독도의 날을 제정한 동기의 하나는 독도 문제에 너무 무관심한 시마네현 주민들의 관심을 끌기 위한 것이었다. 따라서 지방자치단체와 시민사회가 시마네현과 교류를 중단하는 것은 어리석다.

마쓰에에서 만난 산인(山陰)주오신보의 마니와 고(馬庭恒) 이사 편집국장은 이렇게 말했다. "시마네현 의회가 50년 동안이나 중앙정부를 상대로 북방영토에 갖는 만큼의 관심을 독도에도 가져달라고 요구해 왔지만 일본정부는 독도 문제를 제기하는 것은 성가신 일이라는 반응만 보였어요. 한.일 관계를 고려해서죠. 다케시마(독도의 일본명칭)의 날 제정은 일본 국민과 시마네 현민들에게 문제를 제기한 겁니다."

일본정부가 시마네현 의회의 다케시마의 날 제정을 지지.방조했다는 주장은 도쿄와 시마네 현지에서 관찰한 바로는 사실과 거리가 멀다. 오히려 일본 외무성은 지금 보수.우익 쪽 국회의원들로부터 "외무성은 어느 나라 외무성이냐?"라는 힐난을 받고 있다. 보수.우익들의 역할도 시마네현 의회로 하여금 다케시마의 날을 제정하도록 지원하고 선동했다기보다는 시마네현 의회의 그런 분위기를 자신들의 목적에 악용하고 있다.

일본정부는 시마네현이 다케시마의 날 같은 것을 제정해도 한.일 관계가 크게 악화되지는 않을 것이라고 천하태평으로 낙관한 실책은 저질렀다. 사태를 처음부터 심각하게 보았다면 결과가 달랐을까. 중앙정부가 공식적으로는 지방자치단체가 하는 일에 감 놓아라 배 놓아라 간섭할 수 없다. 그러나 시마네현 출신 정계 거물이었던 다케시타 노보루 전 총리는 거의 20년 동안 정부 예산으로 하는 지역구 사업으로 독도문제에 대한 고향주민들의 불만을 달래 극단적인 행동을 자제시켰다.

지금도 두 사람의 시마네현 거물 정치인이 있다. 자민당의 참의원 의원회장 아오키 미키오와 관방장관 호소다 히로유키가 그들이다. 고이즈미 총리가 그들을 움직여 적어도 북핵문제가 해결될 때까지라도 독도문제로 한국과 갈등을 빚는 일은 막아 보려는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은 비판받아 마땅하다. 그러나 그런 노력을 하지 않은 것이 독도의 날 제정을 방조한 것과는 다르다.

시마네현은 경제적으로 가난한 지방이다. 2002년 기준으로 1인당 국민소득 240만5000엔은 일본 전체 평균 284만8000엔의 84.4%에 불과하다. 시마네현의 어업 종사자 4500명에게 독도 근해 어로는 중요하다. 그래서 시마네현 정부가 다케시마의 날 제정에 어떤 후속조치를 취할 것인가가 주목된다. 어민들의 성화가 거세질 것이기 때문이다.

의회 사무국의 이마이 히로시 총무과장은 이렇게 말했다. "2005년의 다케시마 관련 예산 280만 엔으로는 홍보용 팸플릿 제작밖에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노무현 대통령과 한국 국민의 격렬한 반응 덕에 예산 안 쓰고도 독도문제를 전국적.세계적으로 선전할 수 있어서 의원들이 좋아한다고 말했다. 주오신보의 마니와 편집국장도 시마네현 정부의 홈페이지 접속 건수가 한달 평균 6만 건 정도이던 것이 53만 건으로 늘었다고 설명했다. 우리 대통령의 강경발언 덕이다.

지금 한국의 지방자치단체들과 학교.예술단체들은 시마네현 등과의 교류.협력을 경쟁적으로 중단하고 있다. 분명히 바람직한 방향과 거꾸로 가는 대응이다. 독도와 역사교과서를 연계시켜 역사교과서 따위에 관심도 없는 시마네현과 이웃 돗토리현 주민들의 등을 왜곡된 역사교과서 채택 쪽으로 떠밀 게 뭔가. 마쓰에의 호텔 방에서 TV를 켜니 한국의 인기 드라마 '올인'이 나왔다. '겨울연가'에 이어 '대장금' '천국의 계단'과 '파리의 연인'도 큰 호응을 얻었다. 한류는 건재하다. 길은 여기 있다. 대통령이 외교적 전쟁을 외쳐도 지방정부와 시민사회는 일본과 풀뿌리 수준의 교류를 재개.확대하는 것이 독도와 역사를 지키고 애국하는 길이다.

김영희 국제문제 대기자